[정약용을 돌아보다] 1. 허례허식의 타파

의례집 사례가식, 백성의 짐을 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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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다산 정약용이 18년 간의 유배 생활을 마치고 고향 남양주으로 돌아온지 200주년을 맞는 해다. 다산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정치가이자 지식인이다. 무엇보다 그는 열악한 유배생활 중에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목민심서’를 비롯해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저술했다. 이를 통해 다산이 남긴 실사구시의 정신과 경세치용의 가르침은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까지도 큰 교훈이 되고 있다. 본보는 총 3회의 기획기사를 통해 다산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허례허식을 뺀 실속있는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낭비성행사로 거론돼 왔던 지자체장이나 기관장의 이퇴임식도 약식으로 치뤄지는 추세다. 관례적으로 내려와 터무니 없이 비싸고 격식만 따졌던 문화가 오랜시간 문제가됐던 이유에서다.

 

다산은 일찍이 관ㆍ혼ㆍ상ㆍ제례에서의 허례허식을 타파했다. 관례와 풍습이라는 굴레에서 벗어서 현실에 맞게 의례를 조정하고 정리했다.

 

그가 집필한 <사례가식(四禮家式)>이 대표적이다. 이 책은 1808년에 저술한 <제례고정>과 1810년에 저술한 <가례작의>에 담긴 예식을 합하고 정리해 일상생활에서 실천가능할 수 있도록 만든 실용예서다.

 

다산은 앞서 가례작의 관례편에서 “제례를 바로잡기 어려운 것은 나라의 풍속을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례를 바로잡기 어려운 것은 부형(父兄)과 종족(宗族)들의 의론이 많기 때문이다. 혼례를 바로잡기 어려운 것은 양가에서 좋아하고 숭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례만은 바로잡기가 가장 좋다. 이는 주인에게 달렸으니 누가 이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다만 고례의 관례는 의식절차가 복잡하고 많아서 오늘날 사람들이 이것을 그대로 따르기가 쉽지 않다. 주자가례는 고례에 비해 간소하게 줄인 것이기는 하지만 관복제도가 달라 사람들이 여전히 이것을 문제로 여긴다”고 말했다.

 

현실에 맞지 않은 예식으로 인한 백성들의 고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다산이 사례가식을 펴낸 이유이기도 하다.

 

때문에 사례가식에서는 모든 의례에서 사용하는 음식의 규모와 종류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재조정했다. 가계(家計)의 경제적 상황에 맞춰 예를 시행하고, 번다한 절차는 생략함으로써 진정한 예교(禮敎)를 실행하고자 했던 다산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이 책을 펴낸 이후 그는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제례에 관한 이 책은 단지 제상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이것은 서울사람이나 시골사람 할 것 없이 접대할 때, 혼인할 때, 회갑연을 베풀 때 등 모든 잔치음식을 차릴 때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니, 이것을 본받아 잘 지켜 분수에 넘지 않도록 한다면 세상의 교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몇 년 전에만 완성했더라도 우리 선왕(정조)께 올려 전국에서 고루 시행될 수 있게 했을 텐데, 책을 이루고 나니 슬퍼 나도 모르게 흐느끼게 되는구나."

 

지난 15일 남양주 다산유적지에서는 사례가식에 담긴 관례ㆍ혼례ㆍ제례를 재현하는 행사가 열렸다. 실학박물관과 다산전례보존회, 양근향교가 함께 준비한 ‘다산전례복원재현행사’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산의 사례가식을 재현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장덕호 실학박물관장은 “다산 정약용은 유배 이전부터 허례허식을 탐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구가하는 사대부들을 비판하고 실질적이고 개혁적인 학문을 탐구했다”면서 “그의 실학정신이 현재를 위한 시대정신으로, 새로운 미래시대의 실용정신으로 재창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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