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비싼 수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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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지루한 8월을 보냈었다. 하루하루 역대급 폭염으로 지쳐 허덕이는 중에 “제발 비 좀 오게 해 달라!” “제발 이 뜨거운 열기를 식혀 달라!”고 하늘의 자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어났었다. 그런 와중에 애태우듯 피해 달아나는 태풍의 뒤를 보며 “제발 태풍 하나만 지나가게 해 달라!”는 울부짖음을 하나 더하게 하였었다. 

그러다가 반갑게 하나 지나가던 태풍이 삶의 터전을 할퀴듯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하늘이 진노한 듯 이내 비구름이 날개 달고 여기저기 물 폭탄을 쏟아붓는 탓에 원망할 여유도 없이 인간의 나약함을 다시 한 번 배워 깨닫게 하였다. 비싼 수업료를 치른 셈이다.

 

수업료는 수업에 어울리는 가치가 있다. 어울리지 않게 터무니없이 비싼 수업료는 외면받을 수도 있다. 대학의 수업료가 학교에 따라 다른 것이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가끔 학교 등록금을 비교하면서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도 그런 의미이겠다. 

음악도들이 수준 높은 연주가에게 높은 수업료를 내면서 짧은 시간의 현장 레슨이나 정기적 레슨을 받으며 스스로 만족하는 것도 그렇고, 특별한 자격증을 취득하려거나 또는 필요에 의한 외국어를 배우려고 평균 이상의 수업료를 드리면서 만족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이처럼 예측한다면서 태풍이 지나가는 길조차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대비한다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심한 피해를 겪을 수밖에 없을 때, 그제야 인간 문명의 오만함과 인간 존재의 무능함을 깨달아 하늘 앞에 겸손히 머리 숙이게 하니 그 수업료가 보통 비싼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올해 초에 일본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리메이크하여 만든 한국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내용 중에 추수를 앞둔 들판의 벼가 비바람에 쓰러진 것을 바라보던 주인공 혜원(김태리)의 고모(전국향)가 “하늘도 참 무심타!”고 하다가도 “하늘이 하는 일을 우리가 뭔 수로 어떻게 하겠어!” 내뱉듯이 한마디 하는 말도 그런 의미이겠다. 더구나 영화의 전개 내용을 볼 때 뭘 해도 되는 것이 없어 고향으로 내려와 사나흘만 머물다 가겠다는 것이 겨울로부터 봄, 여름, 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로 들어서면서 자연에 순화(純化)되어 가는 이야기를 통해 하늘 아래 사는 인간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성경에 의하면 원래 인간은 존재 자체가 그렇다. 흙 속의 티끌인 ‘아다마’로 만들어진 ‘아담’이 사람이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신이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었을 때 비로소 살아있는 생령이 되었다고 할 때 그것은 신의 간섭이나 도움, 하늘의 섭리를 거슬러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성경 잠언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 16:9) 하였다. 그러니 하늘에 닿아 자기 이름을 내려고 돌 대신 벽돌로 진흙 대신 역청을 사용하면서까지 문화와 과학의 업적을 과시하는 성과 탑을 쌓으려다 신의 진노로 무너지고 흩어져 버렸다는 바벨탑 사건은 어리석은 인간의 표본이라 하겠다.

 

이왕 비싼 수업료를 치렀으니 배우고 깨달은 대로 살아야겠다. 매 맞고 후회하는 인생이 아니라 신을 경외하듯 나 외에 다른 사람을 돌아보며 살아야겠다. 더 겸손히 하늘의 뜻을 행하는 마음으로 신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살피고 나라를 걱정하고 인류를 위해 마음을 순화하며 살아야겠다.

 

강종권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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