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북 연락사무소 개설은 신중해야 한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이 취소되면서 이번주로 예정했던 개성공단 남북 연락사무소 설치가 연기될 전망이다. 청와대는 27일 “새로운 상황에 맞춰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국회에서 남북 연락사무소는 유엔 제재사항이 아니라고 했고, 외무부는 연락사무소의 대북제재 면제와 관련해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마뜩잖은 듯 보인다.

청와대는 지금까지 남북 연락사무소 개설은 역사적인 판문점 회담의 합의사항이라며 대북제재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제자리걸음인 상황에서 남북 연락사무소 개설은 성급히 서두를 사안이 아니다.

차제에 우리의 대외 전략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 포옹하고 민족을 외쳤을 때만 해도 우리는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일부에서는 다 죽게 된 김정은을 왜 도와주냐는 여론도 있었으나 대세에 묻혔다.

잔뜩 기대했던 트럼프-김정은의 싱가포르 회담에서 이상한 조짐을 보이더니, 시진핑이 끼어들면서 사실상 교착상태에 빠졌다.

청와대는 남북 연락사무소가 북한 비핵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하나 여론은 시큰둥하다. 얼마 전 존 볼턴 미국 안보 보좌관은 미국이 문 대통령의 말을 믿고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했으며, 북한 비핵화를 1년 내에 하기로 한 것도 남북정상회담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북한 비핵화가 안 되면 우리가 책임지라는 말이다. 북한 비핵화가 진전을 보이지 못한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과 겹쳐 심각한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국제 정치학자들의 현란한 용어 구사와 설명에도 국민은 이제 냉정한 국제현실에서 살아남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남북 연락사무소 개설문제도 이러한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한반도 평화라는 대명제에 사로잡혀 각론이 없는 길을 가는 형국이다. 시진핑은 미중 간 무역전쟁에서 북한을 지렛대로 사용하려 하고 있고 북한을 어떻게든 자신의 세력권에 묶어 두려 한다.

북한은 영악하게도 이러한 시진핑의 의도를 이용하면서 체제 유지를 꾀하고 있다. 가히 구한말의 상황과 다름없다. 좀 다르다면 우리가 어느 정도 힘이 있고 미국과 같은 우방이 곁에 있다는 점이다.

섣부른 종전선언 추구나 북한의 주적(主敵) 명시 폐기 같은 사안들은 상황을 지켜보면서 해도 늦지 않다. 우리의 역할로 북한의 비핵화를 이루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도 지혜롭게 대처하는 뜻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상주의자란 ‘장미가 양배추보다 향이 좋으므로 더 맛있는 수프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이란 말이 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실로 엄중하다. 목표는 좋지만, 현실감을 가지고 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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