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호기심이 발동해 다시 캐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게 항상 줄을 서야 한다면, 발급 업무를 보다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개선할 일이 아닌가.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람들이 불편해야 이권이 생긴다는 것이다. 줄을 서게 만들어야 급행료 같은 뒷돈이 생기니 대사관 직원들이 일을 고쳐 더 좋게 만들 동기가 없다는 속사정이란다.
비윤리적인 이권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선이 요구되는 분야가 어디인지 충분히 인식하고도 이렇듯 아무런 조치 없이 벋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더 나은 기술과 더 좋은 방식을 몰라서 못 하는 것도 아니다. 충분히 인식하고도 실천하지 않는다. 그런 조직의 경영진은 조직구성원들이 주인의식이 없다며 하소연한다.
주인의식은 조직구성원 스스로가 회사의 주인이라고 간주하고 맡은 일에 자발적으로 몰입하는 것이다. 자신의 경력목표를 조직의 미션과 비전에 일치시키고 임무를 반드시 완수하겠다는 책임감이 투철하다. 지시나 명령, 관행을 따르기보다 고객을 포함한 이해관계자의 관점을 더욱 중시한다. 오늘의 품삯보다 내일의 가치에 집중하며 회사를 쇄신하고 업무를 개선하는 데 주도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인의식을 겸비한 부하직원을 진정으로 반기는 경영진은 막상 드물다. 경영진뿐만 아니라 대부분 관리자는 이런 직원을 오히려 성가시고 부담스럽게 여긴다. 부하직원의 주인의식이 본인의 지시나 경험치에 종종 배치되기 때문이다. 애당초 부하직원의 시간과 능력을 회사에 맹목적으로 올인해 주길 바라면서 자의적으로 주인의식이라고 포장했을 뿐이다. 이대로라면 주인의식은 허울이고 머슴을 원했다고 봐야 한다. 머슴이 주인의식을 가지면 역심을 품은 반역자이다. 꺼려질 수밖에 없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고 하였다. 조직구성원의 주인의식을 논하기 전에, 이를 맞받아 줄 경영진의 주인의식부터 살펴야 한다. 조직 상층부, 수뇌부의 인식을 주인의식으로 혼동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패착이다. 주인의식은 권력의 크기, 지위고하와는 무관하다. 실질적 소유주임에도 불구하고 주인의식은 온데간데없고 사익을 위해 조직과 구성원을 악용하는 사례는 허다하다.
한편, 주인의식을 고취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투명성이다. 투명성은 좋고 나쁜 정보에 관계없이 사실대로 적시에 공개하는 것이다. 조직의 사명, 목표뿐만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도 투명하게 밝혀야 조직구성원이 회사의 처지와 나아갈 방향을 충실히 이해할 수 있다. 투명한 공유는 조직구성원을 신뢰한다는 신호로 작동한다. 나를 믿어준다는 확신은, 자발적 참여와 몰입으로 이어져 주인의식 조성의 근간이 된다. 따라서 정보 독점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에 탐닉하는 조직에서 주인의식은 기대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조직구성원 모두가 주인이 되어야 하는지 되짚을 필요가 있다.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 父父子子). 나라를 잘 다스릴 방법으로 공자가 제시한 답이다.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각자 맡은 바를 성취하는 것이 기본이다. 주인의식을 당위적 의무나 도덕과 결부시켜 강요하고 있지만, 어쩌면 존재가 규정하는 의식을 바꾸는 일이 애초부터 어불성설일 수 있다. 공자의 경구처럼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가 주인인지 우선 반추해 볼 일이다.
우형록 경기대학교 융합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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