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자가 본 경기일보 30년]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뿌리내린 바른 언론… ‘30년 내공’ 새로운 도약 밑거름”

▲ 배정근 숙명여대(미디어학부) 교수는 경기일보 창간 30년을 맞아 “좋은 신문은 독자를 향해 있어야 하고 독자에게 헌신하는 신문”이라고 조언했다.   전형민기자
▲ 배정근 숙명여대(미디어학부) 교수는 경기일보 창간 30년을 맞아 “좋은 신문은 독자를 향해 있어야 하고 독자에게 헌신하는 신문”이라고 조언했다. 전형민기자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해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 만방에 알린 안중근 의사는 1910년 ‘서른’ 살에 일제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당했다. ‘IT 세계 혁명’을 일으킨 스티브 잡스는 1985년 ‘서른’에 자신이 만든 애플에서 쫓겨났다. 12년 후인 1997년 경영부진에 허덕이던 애플에 복귀해 아담이 먹은 사과보다 더 유명해진 사과 로고를 만들어냈다. 

서른의 안중근, 서른의 스티브 잡스는 ‘이립(而立)’, 즉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임을 증명해 보인 셈이다. 누가 서른을 ‘서럽고 낯설고 설익은 나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1988년 창간한 경기일보도 오늘 서른 살이 됐다.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경기일보의 서른 살에 대해 “서른 살은 아직 젊다. 

지난 30년 세월 동안 다져온 내공은 새로운 도약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경기도는 기회가 많은 지역으로 아직 서른밖에 안 된 경기일보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지난 7월23일 배 교수를 만나 경기일보 지난 30년 궤적의 의미를 진단 해보고 30여 년 한국 언론환경의 변화상과 그리고 벼랑 끝 지방언론의 활로와 대안에 대해 들어봤다.

■ 한국언론의 황금기 1987년~1997년 외환위기 직전

“서른, 30은 의미가 참 많다. 벌써 서른, 아직 서른, 고작 서른, 그저 나이로 따지면 계란 한 판 채운 것뿐인데…. 하지만 지역언론 30년은 단순하게 숫자개념만으로 해석하기에는 역사ㆍ사회적 변화, 특히 민주주의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기에 복잡하고 다양하다.”

 

배정근 교수는 독재와 신군부의 사슬에서 풀려나 언론자유화의 서막이 열린 지 31년이 되는 시점에서 지난 30여 년의 언론환경을 회상하면서 민주주의를 언급했다.

“1987년 6월 항쟁의 승리로 국민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여 발표된 ‘629 선언’ 이후 언론기본법이 폐기되고 정기간행물 등록이 자유화되면서 언론자유화의 물꼬가 트였다. 이후 중앙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많은 신생언론들이 출현해 바야흐로 ‘언론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경기일보도 1988년 8월8일 창간해 어느덧 신문인생 30년을 헤아리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가 민주화 됐다는 것을 가장 쉽게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던 부분이 바로 언론이었다.”

 

그러면서 배 교수는 언론자유화 이후 한국 언론역사의 황금기를 ‘1987년부터 1997년 외환위기 직전까지’라고 말했다.

“미국 언론의 황금기는 1960년~70년대로, 그 당시 좋은 인재들이 언론사에 모였고 언론사는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인재와 재정이 선순환 되면서 ‘워치독’ 역할에 충실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미국 언론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1987년부터 1997년 외환위기 직전까지가 언론의 황금기였다.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우수한 인재들이 몰렸고 공적기능을 하면서 하나의 기업으로서 성장하면서 내공을 쌓아갔다.”

 

■ 모바일 퍼스트 변화 속 지자체ㆍ출입처 관행서 벗어나야…“지역이 건강해야 국가가 건강”

배정근 교수는 한국언론이 한때 황금기를 보내면서도 경제적 구조변화, 미디어환경의 변화, 지역시장의 변화 등으로 신문산업이 부침을 겪으며 그 여정이 결코 녹록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민주주의가 건강해지려면 풀뿌리 민주주의가 건강해야 한다. 더 나아가 지역이 건강해야 국가가 건강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언론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중앙집권적 시스템 속에서 부와 자원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보니 지역언론이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그는 뉴스가 모바일로 이동 중이고, 뉴스 소비가 점점 모바일 퍼스트(mobile first)로 이동하고 있는 변화 속에서 신문사가 이 변화의 대열에 가장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퍼스트의 구호는 이제 모든 언론조직에서 당연한 지향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머리로는 수긍하면서도 행동으로 선뜻 이어지지 않는 단계에 머물고 있다. 신문사는 오래된 전통만큼 경로의존성이 어느 조직보다 강하고 특히 종이신문을 통한 광고수익에 전적으로 의존해왔기 때문에 종이신문 중심의 시스템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지적과 함께 배 교수는 지금과 같은 소비패턴이 유지된다면 지역신문은 존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모바일 퍼스트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뉴스의 변화하고 소비자의 변화이기에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 대한민국 언론의 생존 구조가 비시장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출입처와 취재원 위주 그리고 지자체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구조적으로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언론의 생존 구조를 바꿔야 한다.”

 

■ ‘신문은 신뢰재’… “독자 위해 신문 만들었는가 묻고ㆍ반성해야”

배 교수는 재화라는 측면에서 신문은 ‘신뢰재’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새로운 소식을 전하고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며,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제에 대한 공론의 장을 제공하고, 권력의 남용을 감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제도로서의 기능을 한다는 전통적 신문관은 여전히 타당하고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몇 가지 재원이나 특성만 보고 구매하는 ‘검색재’나 경험을 통해 타제품과 비교하고 살 수 있는 ‘경험재’와 달리 신뢰재는 브랜드에 대한 주관적 신뢰로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저널리즘 관점에서도 뉴스미디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정보 및 민주적 시민으로서 공적 현안에 대한 참여와 의견 표명에 기초가 되는 자료를 제공함에 따라 정확성과 공정성, 객관성이 요구된다. 현대 저널리즘의 규범으로 정립된 이들 원칙들은 결국 신뢰라는 평가로 수렴된다.”

 

단, 불행히도 국내에서는 언론과 언론인의 사회적 신뢰가 추락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절대 간과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언론과 기자들은 광고주와 권력에 휘둘리고, 언론의 자유는 떨어지고, 일부 언론인은 정치인으로 변신하면서 언론의 신뢰성은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과연 언론이 독자를 바라보고 신문을 만들어 왔는지 생각해 봤을 때 반성할 부분이 많다. 

언론들은 독자를 위해 만든다고 하지만 정작 출입처, 취재원을 의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언론이 많아지면서 속보 위주의 경쟁을 하다 보니 오보를 양산하고 무엇보다 세월호 사건에서도 잘 드러났지만 취재원 인권을 배려하는 성숙한 자세를 보이지 않는 것들이 누적돼 신뢰도 저하로 이어졌다고 본다. 독자를 위해서 신문을 만들었는가, 진실을 끝까지 추적했는가, 언론이 스스로 권력을 누리고자 하지 않았는가, 자사 이기주의에 빠져서 상업성 행동을 하지 않았는가 반성해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신문’이 되기 위해선 언론 자체 반성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게 배 교수의 이야기다.

 

■ “언론은 독자를 향해 있어야 한다”…실용적ㆍ맞춤형 기사로 승부

배정근 교수는 지방언론이 향후 지역과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선 무조건 독자를 향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자들이 원하는 뉴스가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가치있는 정보를 주고 있는지 기자들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뉴스 기준도 실용성을 따지고 독자 맞춤형으로 가야 한다. 건강, 여행, 미용, 음식 등 독자들의 니즈를 파악해서 기사를 제공해야 한다.

경기도는 서울보다 인구가 많다. 굉장히 큰 시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역언론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 소비자들은 내 삶의 질을 높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에 대해선 많은 비용을 지출할 준비가 돼 있다. 또한 경기도민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주는 역할도 지역언론으로선 상당히 중요하다.”

 

배정근 교수는 몇 가지 대안과 과제를 제시했다. “급변하는 뉴미디어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언론사 역시 환골탈태해 전문 기자의 집단으로 거듭 태어나야 하며, 기자는 기사, 취재력, 전문 분야 등 남과는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전문성을 갖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기자라는 직업은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배 교수는 마지막으로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보도를 지휘한 전 워싱턴 포스트 편집국장 벤자민 브래들리가 2010년 국내를 방문했을 당시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통해 경기일보와 지역언론이 앞으로 30년을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조언했다.

“좋은 신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살아남는다. 정말로 좋은 신문은 정직한 신문, 공정한 신문, 그리고 독자들에게 헌신하는 신문이다.”

 

강현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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