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 아이 낳고 싶은 나라, 삶의 질 개선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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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세대가 아이 낳고 싶은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난해 9월26일, 문재인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일한 법정 위원회(‘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인데다, 최근 출산율이 급격히 감소하는 심각한 양상을 띠어 그 임무가 막중하다.

 

과거 정부는 1960년부터 1995년까지 무려 35년 동안 ‘가족계획사업’이라는 미명 하에 국민들의 출산을 억제해왔다. 그 결과 출생아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해왔고, 급기야 정부는 1996년 ‘가족계획사업 중단’을 선언한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출생아수는 계속 감소, 2001년 출산율 1.3으로 초저출산시대에 진입하게 된다. 그 후 정부는 대통령 직속으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출범시키기에 이른다.

 

문제는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의 저출산 현상이 예상보다 더욱 빠르게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출생아수가 사상 최저인 약 36만명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이보다 더 감소한 32만명 내외로 출산율 1.0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2022년 이전에 출생아 수가 20만명 대에 진입할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로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5월 출생아 수는 2만7천900명으로 전년 대비 7.9%나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산 현상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현재의 사회구조에서는 2040세대, 특히 젊은 여성들이 결혼·출산·양육을 선택하는 것은 주거비와 교육비 부담뿐 아니라, 경력 단절, 독박 육아 등 생애 전 기간에 걸친 높은 기회비용 지불을 의미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년세대의 절반가량이 결혼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인식하고 있고, 그 결과 1980년 40만건이었던 혼인율 또한 2017년 26만건으로 크게 줄었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정부는 지난 10년간 뭘 했을까? 정부는 국가 발전, 국가 위기 극복이라는 관점에서 국민들에게 출산을 장려해왔다. 그 결과, 합계출산율 1.5라는 정책목표까지 수립하여, 국민들의 반발을 샀다. 국민 개개인의 선택과 자유는 간과해왔고, 국민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실에 대한 불만족은 방치해왔다.

 

이 뿐만이 아니다. 5년 단위로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따라 12년간 126조원의 예산을 저출산에 투입한 바 있다. 이 계획에는 무려 100여 개가 넘는 정책이 백화점식으로 나열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템플스테이, 인터넷 중독 예방 등 저출산과 무관해 보이는 내용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결국 126조라는 예산 역시 부풀려진 수치에 불과한 것이다. 게다가 126조가 전부 저출산 해결에 쓰였다고 하더라도 GDP 대비 1% 남짓 수준이라 OECD 평균에 비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과거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육아휴직 등 일·생활균형을 위한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실제 노동현장에서 제도 활용 문턱이 높아 대부분의 혜택이 대기업, 공무원 및 공공기관에만 집중되었고, 중소기업 종사자나 비정규직 등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문재인정부는 기존 저출산대책의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전환하고자 한다. 출생률과 출생아수에 집착하던 국가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아이를 키우는 2040세대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국가가 주도하는 일방적 출산 장려가 아닌 개인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구조적 제도 개혁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을 바탕으로 주거, 일·생활 균형, 아이 돌봄, 모든 출생 존중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필요한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또한 저출산 대책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현재 GDP 대비 1% 남짓에 불과한 예산규모를 대폭 확대하여 OECD 평균인 2% 이상까지 높여나가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정부가 다양한 저출산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언론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런 정책 추진한다고 출산율이 높아지냐’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자, 이제 우리 질문을 바꿔보면 어떨까? ‘그런 정책 추진하면 아이 낳고 싶어질까?’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이를 낳고 싶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저출산대책 패러다임 전환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김상희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부천 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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