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경기천년 특별전 <오! 경기의 천년여행>이 열리고 있는 경기도박물관 기획전시실에는 가로로 길게 펼쳐져 있는 두루마리가 한 점 있다. ‘초조대장경 화엄경 권제1(初雕本大方廣佛華嚴經 卷第一)’ 한자로만 가득한 다른 문서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이 유물은 의외로 국보(국보 제256호)이다.
어지간해서는 외부에 빌려주지 않고, 경기도박물관에서도 아껴가며 전시하는 ‘레어템’인 셈이다.
하지만 유물의 이름이 길고 뜻도 어려워 친해지기가 쉽지 않다. 간단히 풀이해 보면 ‘초조’는 처음 새겼다는 뜻이고 ‘대장경’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두 모아 정리한 경전을 말한다. 인쇄술이 발달하자 불경을 널리 보급하기 위하여 경전을 나무판(木板)에 새기고 이를 찍어 두루마리나 책으로 만들었다.
즉 ‘초조대장경’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새겨진 대장경이라는 의미로, 우리나라 대장경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에 비해 먼저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화엄경>은 불교의 한 종파인 화엄종(華嚴宗)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전을 가리킨다.
초조대장경은 고려의 거란 침입 때 만들어졌다. 고려는 한반도 북쪽에 위치했던 거란과 30년 가까이 전쟁을 했는데, 특히 1010년 거란의 2차 침입 때는 당시 임금이었던 현종(재위 1010~1031)이 남쪽으로 피난을 가고 수도 개경을 빼앗겼을 정도로 위태로웠다.
이즈음 만들기 시작한 것이 초조대장경이다. 이규보의 기록에 ‘옛날 현종 2년(1011)에 거란의 왕(契丹主)이 크게 군사를 일으켜 고려를 침략하자, 현종은 남쪽으로 피난하였는데, 거란 군사는 오히려 송악성(松岳城)에 주둔하고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종은 여러 신하들과 함께 더할 수 없는 큰 서원을 하여 대장경을 판각해 완성한 뒤에 거란 군사가 스스로 물러갔습니다’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대장경에는 부처님의 힘을 빌어서라도 거란의 침입을 막고자 하는 고려인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이렇게 새겨진 <화엄경>을 인쇄한 것이 바로 저 두루마리이다.
1011년경 시작된 대장경 제작은 1087년(선종 4년)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232년 몽골 침략 때 대장경 목판이 불에 타 없어지고 말았다. 현재 남아있는 것은 당시 간행된 인쇄본이니 귀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80권으로 이루어진 <화엄경>중에서도 유일한 권 1이니 국보라는 지위(?)가 과한 것은 아니다.
까마득한 과거의 생활이나 이야기를 책으로 배워 짐작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대장경과 같이 당시 사람들의 눈물, 두려움, 공포, 희망, 염원이 그대로 담겨있는 ‘타임캡슐’을 마주했을 때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생각보다 큰 즐거움과 배움을 선사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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