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회사로 들어선 노동자들이 삽을 집으려 일렬로 늘어섰다. 둥근 모양, 네모난 모양, 길쭉한 모양 등. 각자 마음에 드는 삽을 고르는 듯도 싶고, 그저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드는 것도 같다. 그들은 배정된 작업장에 따라 선철이나 석탄, 토탄을 삽으로 퍼 옮기는 일을 시작한다. 옮길 내용물도 다른데다 삽머리 모양이나 삽자루의 길이도 각양각색이니 작업능률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이런 광경은 산업화 초기의 평범한 작업현장 모습이었다.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잘못된 작업행태는 방치되었고 생산효율성이란 개념도 없던 시절이다. 당시의 조직관리는 인습과 직감에 의해 주먹구구로 이뤄졌다. 이를 눈여겨 본 사람은 근대경영학의 아버지인 테일러(Frederick W. Taylor)이다.
그는 삽질을 잘하는 건장한 노동자를 선발해 실험을 하였다. 한 삽으로 퍼 나르는 무게를 변경해 가면서, 가장 효과적인 한 삽의 무게가 21.5파운드임을 밝혀낸다. 그보다 적거나 많으면 1일 총작업량이 오히려 감소한다는 사실을 검증하였다. 나아가 삽을 꽂는 최적의 속도, 각도, 높이도 규명하였다. 옮겨야 할 물질의 특성에 적합하도록 삽의 종류와 크기도 표준화하였고, 적절한 휴식시간도 설정하였다. 그 결과, 1인당 12.5톤에 머물던 선철 운반량이 47톤으로 증대되기에 이른다.
사소해 보이는 삽질에, 측정이라는 인간의 지적 행위가 적용되면서 생산력의 혁신을 일궈낸 역사적 사건이다. 이렇듯 ‘삽질의 과학화’로 테일러는 명성을 얻었고, 세밀한 측정에 기초하여 동작 및 시간 연구를 내세웠던 그의 주장은 ‘과학적 관리’로 일컬어지며 당대를 풍미했다. 경영학 구루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는 “측정할 수 없다면 관리할 수 없다”라는 경구의 기원으로 평가된다.
측정의 효익은 자명하다. 측정으로 데이터를 얻고, 데이터를 분석해 정보를 획득한다. 현상을 파악하고, 개선의 기회를 발굴하는 촉발점에는 어김없이 측정이 자리한다. 요컨대 측정은 불확실성을 낮춘다. 본디 불확실성은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무지와 직결된다. 더구나 사실을 잘못 파악해 틀린 정보를 믿는 오해의 상태라면 더욱 심각해진다.
우리는 무식과 오해를 극복하고자, 측정지표를 확장하고 세련된 측정기법을 꾸준히 고안하였다. 이로써 괄목할 양적 성장을 이뤘지만, 세기가 바뀌면서 그 효과는 답보하고 있다. 측정 자체의 정확도나 신뢰도 탓이라기보다는 관리역량이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측정하지만, 관리할 수 없거나 관리가 불필요한 경우가 허다하다. 행동과 개선을 견인하지 못하면 측정의 가치는 반감한다. 말 그대로 측정을 위한 측정으로 전락한 것이다.
모름지기 측정활동은 측정할 수 없는 영역으로 확대되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우리의 측정능력은 측정하기 쉬운 영역에 집중되어 있다. 관찰이 용이한 고객응대 횟수나 시간에는 극도로 세분된 지표를 운영하면서, 고객만족이나 충성도 같은 궁극적인 성과지표의 개발은 더디다. 관찰이 쉽게 용납되는 비정규직이나 하급직의 측정지표는 난무하지만, 고위층에는 엉성드뭇하다. 치명적인 범죄와 사고가 정작 고위층에서 일어난다는 걸 알면서도 잣대를 들이대기가 무안해서다. ‘병목’은 항상 병의 상단에 위치하는데, 측정은 없다.
우리의 삶은 측정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을 두어 개로 압축하기엔 복잡다단하다. 단순 명료한 인과관계라면 이미 개선되었을 것이다. 다양한 원인이 얽히고설켜 풀기 어려운 영역이야말로 측정과 개선을 주도할 관리역량이 절실하다. 그러나 같은 이유를 들어 의사결정을 미루고 책임을 회피한다. 하물며 작은 시도라도 할라치면 안 되는 이유를 즐비하게 내세워 발목을 잡는다.
작금은 불확실성이 높다는 사실만 확실한 시대이다. 측정하기 어려운 곳에 측정역량을 집중하고 동시에 실험적 시도로서 관리역량을 발휘해야,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 있다. 측정 없이 관리도 없지만, 관리 없는 측정은 삽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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