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현실에 맞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낙태죄 폐지

지난 24일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법재판소의 첫 공개변론이 열렸다.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둘러싸고 또다시 팽팽한 공방이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여성가족부는 낙태죄 폐지의견을 헌재에 낸 상태다. 위헌으로 결정된 간통죄처럼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OECD 회원국의 80%가 일정한 사유를 포함한 낙태를 허용하고 있고 낙태를 불허하는 가톨릭 국가 아일랜드도 폐지 여부를 25일 국민투표에 부친 결과 66.4%가 찬성해 낙태를 허용했다. 낙태 허용을 위한 아일랜드의 사회운동에 불을 붙인 건 2012년 31세의 젊은 나이로 숨진 사비타 할라파 나바르였다. 임신 17주 차 사비타는 양수가 터져 아이를 지우지 않고서는 목숨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병원의 거부로 아이도 죽고 사비타도 숨졌다. 이 사건 이후 임신부의 생명에 지장이 있을 때는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도록 규정을 완화했다.

하지만 이번 투표로 조만간 임신 12주 이내 중절수술에 대해서는 제한을 두지 않고 그 이후는 산모의 건강과 생명에 중대한 위험을 미칠 우려가 있을 때만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으로 법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제 헌법재판관의 구성이 달라졌고 시대 또한 변했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다. 강간 등 원치 않는 임신은 별문제가 없으나 정상적 부부관계나 불륜, 성에 무지한 어린 미혼모의 경우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아일랜드의 경우를 헌재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연 16만건의 낙태수술이 이뤄지고 있으나 실제 행정처분은 최근 5년간 27건에 그쳤다. 낙태를 허용하면 지금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라고 반대하는 의견도 있으나 법이 무서워 낙태를 피하는 경우는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낙태허용 찬반의 핵심은 현실과 이에 따른 사회적합의가 초점이 돼야지 뻔한 얘기만 한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산모의 건강이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인들 해결은 요원하다. 의도든 실수든 몸에 칼을 대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 재단해서는 안 된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이 실수로 임신했다고 고백할 때 부모는 이유 불문하고 딸의 건강부터 보고 결정을 내릴 것이다. 낙태가 산모의 건강에 위험하다고 판명될 경우 출산 후 입양기관에 맡기든 아니면 낙태를 시도할 것이다.

미혼모의 굴레를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도 수많은 케이스를 보고 국민투표에 부쳤다. 이번 헌재의 변론에서는 일정한 요건을 갖춘 상황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전 세계적 현실이 반영돼야지, 철 지난 주장만 서로 반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