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여러 면에서 신뢰를 받고 있다. 중립을 표방하며 전쟁의 참화를 비켜났고, 잘 정비된 사회복지정책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정치지도자들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국민총소득(GNI) 대비 공적원조(ODA) 부담률이 UN 목표인 0.7%를 웃도는 1% 이상을 유지하는 인구대비 1위 원조국이고, 난민과 정치적 망명도 꾸준히 수용해 국제사회의 인도적 책임을 선도적으로 수행하는 나라다.
스웨덴에는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연구소들이 있다. 그 가운데 ‘안보와 개발정책 연구소(ISDP)’는 2007년 설립된 신진 연구기관으로서 수년간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6자회담 참여국 정부의 관리나 학자를 초청해 연중 1~2차례 1.5트랙 학술회의를 개최해왔다.
한국으로서는 북한의 중견 관리와 얼굴을 마주하고 핵ㆍ미사일 문제까지 포함한 한반도 상황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매우 드물고 소중한 기회였다.
국제사회의 엄중한 제재에도 핵과 미사일 개발을 서두르던 북한, 제재 일변도 정책에 몰두해 모든 대화와 접촉을 끊고 있던 당시 한국 사이의 대화가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남북한 사이에 1.5트랙 대화의 장(場)이 유지된다는 자체만으로도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스웨덴에 대한 북한의 신뢰에 더해 ISDP 관계자가 수시로 북한을 방문하고 북한 인사를 연구원으로 초빙하는 등 상호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있었기에 남북한 단절의 시대에도 직접대화를 주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5.6 ISDP는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협력해 스톡홀름 소재 연구소 내 한국센터를 출범시켰다. 중국, 일본센터가 이미 활동 중인 데 비해 뒤늦은 감이 있으나, 축적된 한반도 연구 경험과 북한과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번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에서 유럽은 소중한 교훈의 보고(寶庫)다. 전쟁과 평화로 점철된 유럽의 오랜 역사를 들추지 않더라도, 냉전시대인 70년대 중반 동서진영 간 평화의 싹을 틔운 헬싱키 프로세스, 20년 전 ‘협상을 통한 평화’의 전례를 남긴 북아일랜드 평화협정과 같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체제를 확립하고 공동번영을 이룬 경험이 있다.
그뿐 아니라 30년 전 폴란드를 비롯한 중유럽 국가들의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에서 시장경제 체제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경험은 북한 체제개방에 중요한 뜻을 가질 수 있다. 남북한이 직접 다방면의 교류를 확대해나갈 날이 머지않다 하더라도, 유럽이 북한의 신뢰를 토대로 북한과 한국을 대상으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를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유럽의 북한 연구자들에 의하면 북한은 새로운 시대에 대비해 이미 중견급 정부 관리들을 수개월씩 교육훈련에 투입하고 있으며, 금융시장이나 노사문제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경제현장의 경험을 배울 방안을 유럽 각국에 타진하고 있다고 한다.
남북한 직접채널이 조만간 모든 면에서 위력을 발휘하길 기대하나, 결코 평탄치만은 않을 앞날을 생각할 때 유럽의 경험과 가치는 충분히 참고할만하며, 막 출범한 ISDP의 한국센터가 가교 역할을 충실히 담당해 주길 기대한다.
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前 주OECD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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