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현
버리고 떠난
시골 빈 집
돌담
틈새로 새어나온
귀뚜라미 울음소리만
담에 기대어
환한 달빛 아래
오늘 밤도
잠 안 자고
목이 쉬도록
애타게 주인을 부릅니다.
끼루루 끼루루
깊은 가을밤
몇 해 전 일본 여행에서 본 것 중 하나는 빈 집이 많은 시골 풍경이었다. 굳게 닫힌 창문, 아무 것도 널린 게 없는 마당 안의 빈 빨랫줄,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힘든 동네…남의 나라이긴 해도 시골이 황폐화된 걸 보는 기분은 여행의 맛을 씁쓰레하게 하였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도 시골에 빈 집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요즘엔 그 현상이 날로 두드러지고 있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저 황량한 시골 풍경, 시골이 죽어가는 걸 보는 마음은 어둡다 못해 아프다. 위 동시는 버리고 떠난 빈 집을 회색빛깔로 보여준다. 도시로 가면서 팽개치고 간 집, 달빛만 가득한 마당, 귀뚜라미 울음만이 들리는 텅 빈 집. 박지현 시인은 이런 시골 풍경을 아픈 마음으로 시 속에 담았다. 그러면서 ‘빈 집’을 통해 우리들의 공중에 뜬 삶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시골집은 단순히 낡은 집이 아니라 우리들의 정신적 고향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 그 집에는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가, 그 위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았던 삶의 터전. 여기에서 ‘끼루루 끼루루’ 애타게 주인을 부르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다름 아닌 시인 자신이다. 그리고 어쩌면 고향을 잃어버린 우리들 자신이라는 생각도 든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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