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을 해석하면 “하늘 위 하늘 아래에 오직 그 스스로 존귀하다. 이 세상이 고통스러우니 내가 기필코 고통을 편안하게 하리라”라는 말씀이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전쟁과 병고와 죽음이라는 고통,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 원수와 만나는 고통,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고통, 육신과 정신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고통들을 없애주기 위해 우리 곁에 오신 것이다.
여기서 삼계는 우주법계를 말한다. 우주의 나이는 137억년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주에서 새로 탄생한 지구의 나이가 45억년이라고 한다. 인간의 나이를 길게 잡아 100년이라고 한다면 4천오백만 번의 전생이라고 볼 수 있다. 인도에서 말하는 1겁의 시간은 우주의 탄생과 소멸과 공(空)의 반복된 시간을 이야기한다. 거기서 나란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삶이라는 고통에서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은 끝없이 죽고 태어나는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좋은 인연으로 진리의 가르침을 만나면 육신의 죽음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에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이다. 몸은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자신이 살아가면서 행한 육신의 행동과 입으로 한 말과 생각으로 지은 선행은 모두 다음 생에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그 좋은 인연이 예수님이든 알라든 부처든 하느님이든 우리의 의식 세계를 뛰어넘는 영적 차원의 세계에서 나를 구원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다행히 모두가 좋은 인연의 종교 지도자를 만나 세계 모든 종교가 들어와도 서로 크게 싸우지 않고 국민에게 바른 진리를 전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과 중동, 미국 등은 종교적 갈등과 이민족간의 불화로 무서운 살육이 자행되고 있다. 종교가 고통의 원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무리 좋은 말씀도 내 것이 제일이라는 아집에 빠지면 그 순간 진리는 악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남의 처지도 인정할 때 불화는 사라질 수 있다.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간 후에는 고마운 뗏목을 짊어지고 갈 것인가, 버리고 갈 것인가? 당연히 버리고 가야하는 것이 지혜인 것이다.
그래서 옛 도인들은 살불살조(殺佛殺祖)하라고 가르쳤다. 즉 “부처도 초월하고 조사도 초월해서, 불타와 조사 보기를 원수같이 보아야만 참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근본목표가 돼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고, 진리에 의지하라.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는 이 말씀을 강하게 다른 용어를 써서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우는 방법이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수많은 조사(祖師)들이 “중 믿지 말라”고 했던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어지러운 세상 참 나를 찾는 지혜가 필요한 때라고 본다.
선일스님
법명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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