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어주는 남자] 느릿느릿

소소한 삶의 여유 속 진정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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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이은봉

느릿느릿 천천히 잠자리를 정리한다. 여유 있게 시작할수록 아침은 더욱 밝다.

천천히 조간신문부터 펼쳐 들고 읽는다.

그동안의 아침은 너무나 바빴다. 젊어서는 없었다, 게으름을 피울 시간!

오늘은 좀 빈둥댄다, 한가한 마음으로!

<분청사기 파편들에 대한 단상>, 책만드는집, 2017.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의 수필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제목부터 이목을 끈다. 마치, ‘악덕’을 찬양하라는 ‘도발’처럼 보인다. 러셀은 글머리에서 “사탄은 늘 게으른 손이 저지를 해악을 찾아낸다.”는 어른들의 말을 강직하게 믿어 열심히 일하는 것을 양심의 준칙으로 삼아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믿음이 오산이었다는 것이 바로 〈게으름에 대한 찬양〉의 핵심 내용이다. “근로가 미덕이라는 믿음에 의해 엄청난 해악이 발생”했기에 행복해지려면 여가를 즐기라는 그의 메시지는 ‘속도와 경쟁’의 바퀴에 깔려 삶의 의미를 잃어가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공감을 준다. 게으름은 악덕이고 근면은 미덕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대해 차라리 “열쇠는 선이고 열쇠구멍은 악”이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고 그는 말한다. 러셀이 말하는 게으름이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윤리적 나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자기배려’의 기술로 이해하는 것이 온당하다.

 

이은봉 시인의 〈느릿느릿〉은 읽을수록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지만 또 한편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세수도 하지 못하고 대충 옷만 챙겨 입고 후다닥 집을 나서 간신히 지옥철에 피곤한 몸을 맡기는 현대인의 ‘아침’은 근로가 미덕이라는 불편한 믿음이 만든, 혹독하게 말하자면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경쟁사회의 차가운 명령이 만든 서글픈 풍경일 것이다. “그동안의 아침은 너무나 바빴다.”는 화자의 진술은 바로 경쟁사회의 악착과 독촉에 끌려 다녔던 과거에 대한 소회일 것이다. 하고 싶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소소한 삶의 여유들, 이를테면 천천히 이불을 개고 여유롭게 조간신문을 읽는 아침의 풍경이 그렇게 어려운 일들이었을까? 늦게나마 “게으름을 피울 시간!”을 음미하며 한가한 마음으로 ‘오늘’을 빈둥거리는 화자의 모습이 한갓지고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젊어서는 없었다.”는 화자의 말이 마음에 걸린다. 왜 없었을까? 독자들에게 이 물음을 갖게 하기에 시 〈느릿느릿〉은 시인의 사적 고백이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진정한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다.

 

어떤 이들의 아침은 기름지다 못해 권태롭다. 가사도우미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운전사가 모는 고급차를 타고 회사엘 간다. 그리고 소위 ‘갑질’이라 짓을 서슴없이 자행한다. 러셀이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쓴 이유는 그들의 기름진 ‘게으름’에 맞서기 위해서일 것이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자기배려의 ‘게으름’으로 ‘근로가 미덕’이라는 시대의 협박(?)에 맞설 때 삶의 진정한 행복이 깃들 것이라 믿는다. 이은봉 시인은 아마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청춘이여, 늦기 전에 게으름으로 반항하자!”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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