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무분별한 토건개발 공약 재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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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란 민주주의의 최상의 학교이며, 민주주의의 성공의 보증수표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방선거 공약만 보면, 이 말은 틀린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지방자치의 출발점인 지방선거가 토목시장 규모 확대의 보증수표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매년 감소하는 SOC 예산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대규모 개발공약 사업에 힘입어 150조 원에서 155조 원으로 추정되는 토목시장의 규모가 매년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SOC 예산 축소 기조는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정부의 올해 SOC 예산은 19조 원으로서, 20조 원대 시대가 붕괴되면서 지출 구조조정에 집중하고 있다. 도시재생과 안전분야를 제외하고는 신규사업을 최대한 억제하고 완공 위주로만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이로 인해 지난 3년간 호황기를 누렸던 건설사들은 빠른 경기하락을 우려하면서도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도 어김없이 민간참여 방식의 대규모 개발공약에 봇물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그렇다면 지방선거에서 토목개발 공약이 성행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우선 가장 손쉽고도 커다란 규모의 국비를 한 번에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둘째, 단체장의 치적 홍보로 대형건설 사업은 가시적인 효과를 높일 수 있고, 노후 인프라 시설 유지 보수를 위한 2차 시장이 형성되어 지속가능한 수혜(?) 가능성을 높고 있다. 셋째, 유권자들의 소유적 욕망도 한몫한다. 인간의 기본적 수요인 주거권이 취약한 장애인, 청년을 위한 임대주택 건설에는 반대하면서 내 집값과 땅값을 올리기 위한 지대 추구(地代追求) 행위에는 적극적이다. 마지막으로 지방자치의 세수는 자주재원과 의존재원으로 나뉘는데 지방세와 세외수입으로 구성되어 있는 자주재원 확대를 위해서는 토목건설사업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결국 대부분이 지역 예산과 관련한 것이다.

 

문제는 필요 이상으로 토목건설사업이 이루어져 전국이 난개발의 몸살을 앓고 있고, 사후 관리 비용 때문에 재정 건전성의 적정선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도로 유지 및 보수비용이 상승하여 지자체의 재정이 휘청거리고 있다는 데서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재정의 위기는 당장 닥친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한 다양한 문화 복지 사업이 취약해지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로, 철도 등의 이용자가 감소하게 되어 결국 유령도시로 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공직사회의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사업의 인허가권 쥔 공무원의 불법 리베이트로 적발 사례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대부분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대형토건사업비를 공짜 돈이라는 생각에 쉽게 써버리기도 한다.

 

미스터 지방자치로 불리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방자치 도입 당시, 토목개발에 따른 수익을 지방자치의 안정적 세원으로 간주하였다. 그 당시 지방자치의 자주재원 확보를 위한 합리적인 정책적 판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로, 철도 등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앞으로 개발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지방자치의 자주세원에 대한 세목조정이 필요하며 세원의 출처도 다시 설계할 때가 온 것이다. 또한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며 인구학적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시민들은 콘크리트 행정에서 삶의 질적 향상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지방자치 12년을 맞이하고 지방선거를 임하면서 복지 및 문화가 후보자의 주요 정책공약으로 담기길 바란다.

 

오현순 매니페스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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