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50년 만에 최빈국에서 국내총생산(GDP) 11위, 수출 6위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해 세계사에 유례없는 경제발전 성공사례로 인정받고 있으나, 민주주의 발전 과정은 최근까지 국제사회에서 충분히 인식되지 못해왔다. 하지만 2016~2017년 촛불시위를 통해 한국의 역동적인 민주주의 역량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민주주의의 세계적 확산을 위해 활동하는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민주주의기금(NED) 주관으로 오는 5월 세네갈에서 개최되는 ‘민주주의를 위한 세계운동’ 제9차 총회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 후원으로 국내 인사들이 참여하여 한국의 촛불민주주의를 의제의 하나로 다루면서 다른 나라의 학자, 운동가들과 토론할 예정이다. 총회 외에도 올해 중, 워싱턴과 서울에서 각각 학술회의가 한 차례씩 개최되어, 우리의 민주주의를 향한 노력이 국제사회로부터 ‘존경받는 정치적 가치’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평창동계올림픽을 전환점으로 한반도는 전쟁의 위기에서 벗어나, 주요 당사국간 일련의 정상회담을 통해 핵무기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제도적으로 정착시켜 나아가기 위한 모멘텀을 쌓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압도적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준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소프트파워 원천 중 하나인 ‘정당성과 도덕성을 갖춘 외교정책’의 사례라고도 하겠다.
런던에 본부를 둔 Portland Communications사와 미국 남가주대학(USC)의 공공외교센터가 측정한 2017년도 소프트파워 순위에는 한국이 30개 대상국가 중 21위에 올랐다. 평가기관은 한국이 실제 구비한 다양한 요소별 역량에 비해 국제사회에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거나 부정적 인식을 주고 있는데, 북한의 위협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영향이 크므로 이를 줄이기 위한 공공외교 노력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문화를 매개로 하는 공공외교, 경제와 민주주의 발전을 주제로 한 공공외교를 꾸준히 전개하는 한편,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우리의 정책과 노력에 대해 국제사회에 보다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남북한과 주변국간 복잡한 조합으로 일련의 정상회담을 거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이라는 과업을 달성하는 일은 확고한 국민적 지지, 국제사회의 충분한 동의 없이는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이 엄중한 과업의 성패를 좌우할 영향력을 가진 미국, 중국 등을 상대로 하는 정부의 외교활동을 공공외교 측면에서 지원하려면 무엇보다 이들 국가의 여론주도층으로 하여금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우리의 정책 방향에 대해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국가와 민족의 명운을 좌우할 중대한 외교 사안이 숨 가쁘게 전개되고 있는 시점에는 범국가적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잘 정제된 메시지를 흐트러짐 없이 수면 위, 아래에서 국제사회에 발신할 수 있도록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前 주OECD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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