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이탈리아의 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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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중소기업이 가장 견고하고 활발한 나라를 든다면 독일, 이탈리아, 대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는 중소기업의 크기가 다른 두 나라보다 더 작고도 견고하며, 훨씬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 기업의 제조업 기술과 장인정신은 유럽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부터 유명했다. 그래서 중소기업의 육성에 관심이 많은 한국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이 시찰차 이탈리아를 많이 방문하곤 한다. 그러나 그곳 중소기업의 개념이나 운영방식이 한국과 너무도 달라서 한국에 적용할만한 점을 별로 발견하지 못하고 떠나곤 한다.

 

필자가 주이탈리아 대사로 일하던 2015년 당시 이탈리아는 1인당 국민소득(GDP) 순위가 한국의 바로 코앞에 있었고 더욱이 당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이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던 터라, 한두 해만 지나면 한국이 이탈리아를 곧 추월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정반대로 이탈리아의 GDP 순위는 더 격상된 반면 이탈리아와 한국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그것은 다분히 이탈리아 경제를 떠받치는 이름 없는 수많은 중소기업 덕분이었다. 그들은 혹독한 경제적 불황 속에서 정부의 별다른 지원도 없이 대부분 살아남았고, 지난 수백 년간 그래왔듯이 바깥세상이야 어찌되건 묵묵히 자신들의 자리를 지켰다.

 

이탈리아의 중소기업의 대표적 특성을 들자면, 첫째 대부분이 가족단위의 미니기업이고, 둘째 집안에 전해져 내려오는 기술력을 토대로 농가공업과 제조업에 종사하는 기업이 대부분이며, 셋째 수백 년간 자손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기업이 많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전체 GDP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달하며, 특히 가족기업이 GDP의 80%를 점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규모는 아주 작다. 이탈리아의 전체 기업 중에서 10인 이하 소기업이 94.8%이고, 5인 이하 기업도 약 90%에 달한다.

 

5인 기업이라고 해서 사장 한 사람이 4명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사장으로서 세일즈를 하고, 아들과 사위가 가게 위층에서 제품을 만들고, 부인은 1층 가게에서 물건을 팔고, 딸은 회계를 보는 식이다. 그러니 노조도 없고 파업도 없고, 아무리 회사 사정이 어려워도 이익금을 조금씩 덜 가져가면 그만이므로 큰돈은 못 벌더라도 망하는 기업은 별로 없다.

필자가 포도밭을 경작하는 토스카나의 어느 농가에서 민박했을 당시 주인에게 물어보니, 직접 포도농사를 지어 연간 2만 병의 포도주를 자기 브랜드로 생산해 출하한다고 했다. 직원이 몇 명인지 물어봤더니, 자기 부인과 두 자녀가 전부이고 포도 수확철에만 1~2명을 임시로 채용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이탈리아의 가장 전형적인 중소기업 형태였다.

 

자기 부모세대보다 더 편하고 더 고귀한 직장을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사회상과는 달리, 이탈리아의 젊은이들은 아버지가 농부이건 요리사이건 구두제조공이건 전기기술자건 간에 가업을 승계하는 것을 대부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수백 년의 가업승계가 가능했고 가업을 통한 기술의 전수와 축적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대다수 젊은이가 불필요한 대학 진학을 안 하려는 풍조가 만연하여, 이탈리아 정부에게 하나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기도 하다.

 

이탈리아 상류사회 사람들의 명함을 받고 보면 이름 앞에 ‘Dott.’ 라는 호칭이 붙은 경우가 많다. 장관이건, 주지사건, 교수건, 변호사건 자랑스럽게 그 호칭을 명함의 이름 앞에 꼭 붙인다. 필자는 그것이 당연히 ‘박사’라는 표시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뜻밖에도 ‘대졸’이라는 뜻이었다. 대체 얼마나 대학들을 안 가기에 대졸이라는 것이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까. 고학력자의 무제한 과잉생산으로 취업난과 실업률 증가를 자초한 우리나라의 사례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이탈리아 사회의 일면이다.

 

이용준 前 주이탈리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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