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당공천제 폐지가 답이다 -
오는 6월13일은 지방자치 선거일이다. 4년마다 돌아오는 지방선거는 대선, 총선과 더불어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3대 핵심축으로서 금년도 최대의 중요 국가적 행사라 할 수 있다.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20여 년이 지났으나 국민들은 아직도 지방자치제도가 제대로 정착되었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지방자치단체장(시장군수)과 지방의원(도시군의원)선거에서의 정당공천제와 그에 따른 폐해에 있다고 본다.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도를 도입하였으나 ‘공천이 곧 당선’이다 보니 공천에 따른 비리와 부패, 중앙정치권에의 눈치보기, 줄서기 등이 지방자치의 근간을 흔들어 놓았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지방자치가 정당공천제의 병폐로 인해 지방자치 본래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는 정치가 아니다.
지역주민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일들을 주민들의 의사에 의해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데 지방자치의 본 뜻이 있다. 예컨대 쓰레기 수거, 청소차량배치, 환경미화, 안전한 어린이 등굣길 확보, 소도로개수, 버스노선교통망 정비 등 주민 생활환경 개선, 생활복지 향상 등과 관련되는 것으로, 이는 모두 비정치적인 일들이다. 이러한 일들에 정치가 개입할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은 그야말로 지역일꾼을 발굴하여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며, 또한 효과적이다.
정치와 관계없는, 허세(虛勢)를 부리지 않는 참신하고 유능한 인물들이 맡아야 한다. 현재의 공천제도하에서는 능력과 관계 없이 정치적으로 공천을 받게 되어 그들이 당선되면 대부분 정치적 행동이 불가피하다. 지금 지역의 현실을 보면 예컨대, 다리 하나를 놨다하면 국회의원, 지방의원, 시장, 군수 모두 자기업적이라고 홍보하기 바쁘고 지역행사마다 모두 나서서 얼굴을 알리고 자기선전에 바쁘다.
탈 정치화된 선진국의 사례
국회의원은 중앙정치에,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은 지역생활자치에 전념할 수 있는 효율적인 국가시스템, 그리고 내실있는 지방운영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선진국의 지방자치 실태를 보면 대부분 탈정치화되어 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를 보더라도 시, 군의원에 여성이 많다. 쓰레기 수거, 환경미화, 어린이보호를 위한 안전한 등굣길 확보 등은 가정일에 상시 관심을 가진 여성들이 그 해결방안을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직이나 교육계, 기업 등에 오래 종사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고향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지방의원이나 자치단체장으로 선출되다 보니 그들은 오직 고향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일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그러한 사람들로 지방의회가 구성되고 지방자치단체장이 뽑혀야 한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정당공천에 사활을 걸고 있고, 또한 이로 인해 정치적 성향을 띠다 보니 당선만 되고 나면 다른 생각들을 한다. 지방의원이 되면 다음에는 시장군수, 시장군수가 되면 다음에는 국회의원 해보려는 생각들일 것이다. 그러니 제대로된 지방자치가 난망(難望)할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예속화되어 선거 때면 각 지역마다 공천로비에 법석이고 편가르기가 심해져 선거가 끝나면 지역주민이 갈라져 주민화합에도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때만 되면 지방자치의 활성화와 지방자치의 실질적 보장의 제도화를 외치지만 그때마다 말잔치에 그치고 있다. 이번에도 같은 모습이 되풀이되는 조짐들이 벌써 나타나고 있고 진정으로 개선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지방자치의 실질적 실현은 선거제도 이외에 재정자립 등 많은 부분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제일 우선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지방선거에서의 공천제도 폐지라 하겠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정치권의 적폐청산, 제도개선 차원에서도 접근해 볼 수 있는 사안이다.
정당공천이 없어지면 모두가 무소속이고 인물과 능력 본위의 선거가 이루어지게 되어 지역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당공천제도 폐지를 통한 지방자치의 탈정치화야 말로 실종된 지방자치를 살리고 진정한 주민자치가 실현되는 첩경이 될 수 있다. 기초단체장, 시군구 의원만이라도 우선적으로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것에 대해 정치권의 중지(衆智)가 모아지기를 기대한다.
이범관 변호사·前 서울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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