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어주는 남자] 내 사랑

나에 대한 고백이 그 사람에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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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 전윤호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봉긋한 가슴을 눈 여겨 봐두었지

날 사랑하는 만큼

당신을 파먹어야 하니까

난 당신에게

생살이 찢기는 아픔밖에 줄 게 없어

지금은 사방이 막힌 빙하기

당신의 늑골 속에 숨어 단잠을 자다가

심심하면 손톱으로 그림을 그리지

참나무 숲과 얼지 않은 강

멈출 줄 모르고 뛰어 다니는 아이들

내 사랑

당신은 나의 무덤이야

<순수의 시대>, 달아실, 2017

사랑에 대한 정의(定義)는 사랑의 실체(實體)를 초과할 수 없다. 사랑한다는 말 역시 사랑의 실체를 초과할 수 없다. 장미꽃에 대한 정의가 지상의 모든 장미를 담아낼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의 정의는 사랑의 실상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모든 정의는 허전할 뿐이다. 

사랑한다는 말이 사랑의 밀도를 높일 수 있으리라는 믿음도 역시 허전하다. 말이 그 사람의 몸에 꽂히지 않고 튕겨져 나올 때 사랑은 식기 마련이다. 롤랑 바르트는 <사랑의 단상>에서 “난 널 사랑해”라는 말은 어떤 의미도 전달하지 않으며, 다만 하나의 한계상황에 대한 고착을 의미할 뿐이라고 말한다. 

바르트는 그 고착을 “주체가 그 사람에 대해 반사적 관계에 정지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서로가 서로를 반사하는 관계가 되면 둘 사이의 모든 말은 의미를 잃는다. 그런 게 사랑의 고착이다. 사랑은 행동이고, 행동은 고백의 시작이다. 고백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서가 아니라 ‘나’를 향할 때 진실해진다. 내 행동에 대한 고백이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고백의 행동만이 사랑의 실체를 초과할 수 있다.

 

전윤호 시인의 ‘내 사랑’은 자기고백의 지극한 순수함으로 읽는 이에게 깊고 뚜렷한 감동을 선사한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나는 당신을 파먹어야 한다는 그의 진술은 잔인하거나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당신을 파먹어야 한다는 말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의 반어적 고백일진대, 그 고백의 농도는 “사랑해”라는 표현의 가벼움을 훨씬 넘어선다.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건 ‘생살이 찢기는 아픔’밖에 없다는 표현도 그렇다. 너에게 아무 것도 줄 수 없어 미안하다는 투의 식상한 고백들과는 차원이 달라 보인다.

그런 표현들이 사랑의 실상을 초과해서 진심이 되고 감동이 된다. ‘사방이 막힌 빙하기’처럼 힘겹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 시간은 곧 해빙기를 맞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의 ‘늑골 속에 누워 단잠’을 잘 수도 있을 것이다. ‘참나무 숲과 얼지 않은 강’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손톱으로 그리는 화자의 모습에서 문득 화가 이중섭이 떠오른다.

‘나’에 대한 고백으로 ‘당신’에게 건너가는 시간이 사랑이다. 그 길고 힘든 여정이 ‘나의 무덤’에 다다른다면, 그 시절에 우린 참으로 행복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윤호 시인의 ‘내 사랑’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내 사랑의 실수를 눈 여겨 봐뒀다. 그 실수를 두고두고 파먹어야 하니까.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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