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계석의 문화 돋보기] 문화주권 시대를 열자

제목 없음-1 사본.jpg

얼마 전 지역에서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설치된 세계적인 작가의 전시 작품을 민원이 들어왔다고 해서 공무원이 철거해 버린 것이다. 거센 여론의 비난이 일었다.

민원 제기의 시민 안목도 문제지만, 설치한 예술가에게 묻지도 않은 것은 상식을 벗어난 일이다. 예로 유명 시인이나 작가에게 去處(거처)를 마련해주고 지역 브랜드화 하면서 갈등을 빚은 일도 일어나곤 했다. 어떤 경우든 예술의 가치 훼손은 모두에게 이롭지 않다.

 

핀란드의 세계적인 작곡가 시벨리우스는 정부가 그의 작업을 위해 비행기가 날지 않도록 배려해주었다고 하니 마치 동화처럼 들린다. ‘문화 주권’이란 말이 생소하겠지만, 100세 시대를 살아가려면 문화를 놓치면 큰 것을 잃는 것이기에 일반인도 관심이 필요하다. 문화 예술에 활발한 담론이 펼쳐졌으면 한다.

 

오페라의 나라 이탈리아에서는 공연 후 커피숍에서 화제가 되고, 언론도 기사화에 열을 올림으로써 안목이 매우 높다고 한다. 예술의 관심이 문화의 質(질)을 향상시킨다. 각계각층이 문화로 소통하는 법을 안다면 갈등 해소에도 도움이 되는 문화시대다.

 

정부도 저녁이 있는 삶을 강조하고 나섰다. 특히 청소년에게 말로 하는 것보다 동아리 단체들을 지원하면 원천에서부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당장은 우리지역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에 자리가 비었는데, 어떤 지휘자가 오는 것이 좋을까? 전문성의 문제이긴 하지만 예술가의 논의조차 없다면 지역 문화를 누가 이끌 것인가. 무관심하는 사이 전통과 어울리지 않는 과다한 사대주의 문화가 범람해 균형을 깨트리있다.

 

‘지휘자가 바뀌고 예산도 늘었는데, 도무지 뭐가 감동적이란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회의장엔 침묵만 흘렀다. 오케스트라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감동적인지를 설명하거나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 시의원이 했다는 이 말은 정서로 통하지 않는 음악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캐나다의 한 교향악단 부사장은 ‘영국의 교향악단과 독일의 베를린 오케스트라가 러시아에 가서 쇼스타코비치를 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오케스트라가 유럽 본고장에 가서 그들 작곡가의 작품들을 하는 것을 자랑하지 말라는 뜻과도 같다. 대신 우리 것의 매력을 잘 가공하여 선보이는 것이 국가의 정체성에도 어울린다.

 

원로 이영조 작곡가는 ‘그릇은 빌려도 내용은 우리 것을 담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의 연주 역량은 크게 늘어나 국제적인 콩쿠르의 대부분을 석권하고 있다. 때문에 기술의 문제는 상당히 극복되었고 이를 토대로 우리 작품의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수입 일변도 예술시장에서 수출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전통이란 보물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가공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2~3년 하다 가고 나면 제자리가 되는 손님 예술가가 아니라 지역에 살고 있는 예술가들이 뿌리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서양예술과 우리 것을 모두를 가진 세계에서도 거의 유일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콘텐츠 융합의 제 4차 산업시대는 정보가 아니라 새로운 소재가 필요하다.

 

그래서 문화 주권이 중요하다. 알아야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그 궁극의 목표는 시민의 향수권이고 예술가의 선순환 시장의 확보다. 남의 것을 빌려 쓰기만 하면 더 이상 발전이 없다. 평가와 감시 기능까지 시민문화가 맡아야 한다.

 

도처에 명소가 많은 경기도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문화 요리를 개발에 나서야 한다. 선조들은 인류문화유산이란 큰 선물을 남겨주었는데 후손들이 뭘하고 있는가. 거리는 수도권이지만 문화가 중심이 되는 변화에 문화 주권의 힘이 필요하다.

%EC%A0%9C%EB%AA%A9%20%EC%97%86%EC%9D%8C-1%20%EC%82%AC%EB%B3%B8.jpg

탁계석 예술비평가회장

 

탁계석 예술비평가회장은…

-경기문화예술위원회 전문위원

-한국음악협회 부회장

-문화저널21 논설주간

-세종문화회관·국립극장 자문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