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조태일은 <국토 서시>에서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는 것이 국토라고 노래했어요. 시인만이 아니라 근대 이후의 많은 예술가들은 국토에서 미학적 모국어의 뿌리를 열망했죠. 그것은 그들이 궁구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세계어였을 거예요. 왜 그래야만 했을까요?
우리 근대미학의 체계와 정립을 위한 근대성의 탐색에서 혼란을 초래하는 이중구조는 일본을 통한 서구화와 식민지 강제체험이에요. 18세기 바움가르텐의 ‘미학’을 동아시아의 문자언어로 번역해 유포시켰던 일본이라는 통로는 대동아공영권의 식민정책과 세계전쟁, 그리고 잔혹한 학살의 주범이라는 구조 속에서 동시에 살펴야만 제대로 보이죠.
정비파의 ‘국토’는 그런 상실의 카오스가 여전히 우리 삶을 뒤흔들고 있는 역사적 근대와, 꿋꿋하게 살아서 민족의 현재를 성취해 낸 국토의 옹골찬 풍경을 형상화 한 작업이에요.
1956년생의 그는, 50대의 10년을 완전히 ‘국토미학의 고갱이’를 새기는데 바침으로써 목판화가 성취할 수 있는 판각미학의 새로운 경지를 열고 있어요. 작품의 크기에서, 그 풍경의 밀도에서, 산세와 지세를 드러내는 기법에서, 새와 나무와 산과 강을 동시에 표현하는 수묵의 미감에서, 그리고 시간 수행의 천착과 판화의 상징성과 근대사 및 현대사에 이르는 역사인식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러한 시도는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모순의 근대성이 여전한 현실에서 모순극복의 민족미학이라는 새 화두를 제시하는 것이기도 해요.
신세기를 횡단하는 디지털 아방가르드의 상대축에서 느린 목판화가 보여주는 이 아름다운 힘은 얼마나 황홀한가요!
불상을 새기지 않고 풍경 하나만으로 불국토를 완성했다고 해야 할까요? 그 세계는 하나의 풍경으로 이뤄진 세계이지만 현실과 초현실과 비현실이 오버랩 된 듯한, 그러니까 정신으로서의 비경을 자아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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