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북한, 서둘러 대화의 명분 찾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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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연설이 ‘조건 없는 대북대화 제의’로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끌었으나, 이튿날 백악관은 북한에 대한 입장 변화는 없다고 하고, 장관 자신도 사흘 뒤 유엔 안보리에서 최고 수준의 압박을 통한 북한 핵문제 해결을 강조함으로써 입장을 번복한 것으로 비쳐졌다. 또 12월 18일 발표된 미국의 2018년도 안보전략보고서는 힘에 의한 평화유지(preserve peace through strength)를 안보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다. 한편 북한은 12월 19일자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내부 조정도 제대로 못하는 미국 정부의 일관성 없는 대화제의에는 흥미가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국내 언론에 보도됐다.

 

북한 핵 관련 미 정부 요인들의 메시지가 어디에 방점을 두는가에 따라 다소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나, 현재까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그런대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12ㆍ12 틸러슨 장관의 연설과 질의응답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그는 북한 핵문제를 포함한 외교과제와 11개월간의 외교성과를 설명하는 가운데 ‘대통령도 같은 생각, 대통령의 정책’ 등 ‘대통령’이란 단어를 무려 30여 차례 사용하였다.

그가 연설에서 강조한 대북한 정책 기조를 되짚어보면 그 일관성이 더 명확해 보인다. 첫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가 미국의 정책임을 재천명하고, 북한을 경제 제재, 외교적 고립 등 국제공조를 통해 최대한 압박함으로써 핵과 미사일 정책의 방향을 선회하도록 한다는 것이 과거 정부와 다른 점이라고 하였다. 둘째, 언제라도 북한이 원하는 대화를 할 용의가 있으나, 북한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대화에 나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셋째,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는 동안에도 미국의 군사적 대응태세는 강력하며, 외교노력이 실패할 경우 남는 것은 군사적 선택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만 북한과의 협상은 언제 시작할 것이며 전제조건은 있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 그는 언제든 북한이 원하는 시점에 대화할 용의가 있으며, 조건 없이 첫 만남(first meeting)을 할 준비도 됐다고 대답했다. 상대를 모르니 일단 만나봐야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고, 협상을 어떻게 진행시킬지 의논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굳이 조건이라고 한다면, 대화를 하는 중에 (핵, 미사일)도발을 해서는 곤란할 것이라는 점을 부연하였다. 일단 조건 없이 대화를 시작한 후, 도발을 멈추고 대화 분위기를 이어가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일정기간 도발을 멈추어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국무부의 기존 입장보다는 전향적 제안으로 평가된 것이다.

 

틸러슨 장관은 북한이 일정기간 도발을 자제하면서 대화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오면 미국으로서는 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첫 대화는 조건 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유연성을 보임으로써 결과적으로 북한에 보다 적극적인 대화 신호를 던진 셈이 되었다. 동시에 이래도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으면 남는 것은 군사적 선택뿐이라는 통첩으로도 들린다.

북한은 틸러슨 장관의 연설을 ‘혼선’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대화의 장으로 나올 명분으로 삼고 기회로 붙잡아야 한다. 이제 시간이 정말 많이 남지 않았다. 틸러슨 장관 말대로, 자신의 영역인 외교가 실패하여 국방장관의 영역으로 넘어가 ‘첫 번째 폭탄(first bomb)’이 투하되는 시나리오는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반드시 우리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前 주OECD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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