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고(故) 신영복 선생의 서화작품 ‘통(通)’을 선물로 준 것도 ‘좋아하고 싶다. 서로 통해서 잘해 보자’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대한 시 주석과 중국 정부의 태도에선 같은 마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외교의 기본을 모를 정도로 무례했고 오만했다. 청와대가 아무리 부인해도 중국은 푸대접을 했고, 이는 세계 외교사에 비정상 사례로 남을 것이다.
청와대는 “형식보다 내용을 봐 달라”며 큰 성과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한 고위관계자는 “100점 만점에 120점”이라고 했다. ‘망신 외교’니, ‘혼밥 외교’니 하는 비판을 의식해서 인지는 몰라도 청와대의 이런 자랑은 터무니없다. 형식이나 내용이 초라해서다.
정상외교는 의전으로 시작해서 의전으로 끝난다는 말이 있다. 형식이 좋아야 내용도 좋기 때문에 모든 나라가 의전이란 형식에 각별히 신경 쓴다는 이야기다. 정상외교의 꽃인 공동성명과 공동기자회견이 없었던 것은 양국 입장차이가 여전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탓이라고 치자.
그러나 중국이 공동언론발표문도 거부하고, 그들만의 발표문을 내면서 훈계조의 내용까지 포함한 것이나, ‘국빈만찬’을 진행하면서 정상들의 모두 발언을 생략하고 만찬 사진 한 장 공개하지 않은 점, ‘국빈’이 열 끼 중 여덟 끼를 ‘혼밥’해야 할 정도로 허술한 일정을 잡은 것 등은 예를 갖춘 의전으로 볼 수 없다.
문 대통령과의 오찬을 기피한 리커창 총리와 문 대통령 팔을 툭툭 친 왕이 외교부장의 행동은 청와대가 괜찮다고 해도 결례가 아닐 수 없다. 비표를 지닌 한국 취재기자들을 집단폭행한 중국 측 경호원들, 폭력 사태가 난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공식사과를 하지 않는 중국 정부의 태도는 중국이 신사의 나라가 아님을 보여준다. 외교의 형식이 이럴진대 어찌 홀대라는 말이 안 나오겠는가.
외교의 내용은 어떨까. 두 정상이 합의했다는 한반도 전쟁 불용(不容), 한반도 비핵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 남북관계 개선이란 4원칙은 공허한 것이다. 북한은 핵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런 북한이 진정한 비핵화를 위한 대화와 협상을 할 것 같은가. 중국은 북핵을 사실상 용인해 왔다. 때문에 그들이 강조하는 한반도 비핵화 원칙은 현실적으로 한국에만 해당한다. 이는 한국의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반입이 안 된다는 걸 의미한다. 중국이 주장해 온 한반도 전쟁 불용 원칙은 북한의 핵 포기를 압박하는 군사옵션을 배제하는 것으로, 미국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
한국은 전술핵을 들여올 수 없고, 미국은 군사적 카드를 쓸 수 없다면 무슨 수로 북한의 도발을 막겠는가. 문 대통령은 북한에 최대의 압박이 될 중국의 대북 원유공급 중단을 요구도 하지 않았다고 하니 중국은 홀가분해졌고, 북한의 뱃속도 편해졌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자화자찬을 하고 있으니 허무맹랑하지 않은가.
이상일 가톨릭대 초빙교수ㆍ前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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