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 이지유의 ‘강철 무지개’

굴곡진 역사 속 제주민을 실어나르던 여객선, 꿈이 현실이 되는 신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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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무지개’라니, 무슨 뜻일까요? 검색을 했더니 이민용 감독의 영화 ‘강철 무지개’(2017)가 뜨더군요. “윤봉길 의사가 큰 뜻을 품고 집을 떠나 홍커우공원 의거의 중심에 서기까지의 여정을 다룬 영화”로 소개되고요. 이지유 작가의 그림이 그 영화를 빗댄 것일까요?

 

아녜요. 최인석의 장편소설 ‘강철 무지개’도 뜨네요. 띠지에 “우린 작은 나라를 만들어야 해. 당신이 눈물 한 방울 흘리면 홍수가 지는 나라.”라고 박아서 홍보하는 걸 보니 그 내용이 심상찮았어요. 하지만 주제는 고용불안과 감시체제더군요.

 

이지유의 작품과는 무관했으나, 식민지에 저항했던 ‘의거’, 또 삶의 미래조차 ‘고용불안’, ‘감시체제’에 시달린다는 주제의식이 서로 똑같이 강철 무지개를 표제로 드러냈다는 점이 흥미롭지 않은가요? ‘강철 무지개’는 환상이 아닌 절망적 현실을 희망적 현실로 바꾸려는 의지의 상징인 셈예요.

 

이지유 작가의 2014년 개인전 주제는 ‘유민’. 그것은 이주하는 자들(流民)이기도 하고, 망해서 없어진 나라의 백성들(遺民)이기도 하죠. 그때 ‘군대환(君代丸)’을 발표했어요. 군대환은 1920년대 초 제주와 일본을 오가던 여객선 ‘기미가요마루호’를 직역한 한자말이에요. 

 

제주가 고향인 작가는 ‘유민’에서 처음 재일제주인 문제를 다뤘죠. 시간이 흐르자 그의 문제의식은 좀 더 구체적인 것으로 나아갔어요. 일본의 하라무라 마사키 감독의 다큐멘터리 ‘해녀 양씨’를 통해 재일제주인 1세대인 양의헌 할머니를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전시 주제는 ‘유영(遊泳)’.

 

올해 제주비엔날레를 기획한 김지연 감독은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제주 해녀 양의헌씨(1916년생)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해녀 양씨’는 작가 이지유에게 경계인의 삶을 환기시켜주었다. 일제강점기에 제주에서 태어난 양씨는 소녀 시절부터 해녀 일을 했다. 지옥보다도 무서웠다는 4·3 때 일본으로 밀항했고, 그 과정에서 어린 딸과 이별했다.

 

일본에서 양씨는 조총련 학교에서 일하던 이와 결혼한다. 자연스럽게 조총련에 적을 두었다. 1960년대 북한의 귀국 사업 때문에 3명의 아들마저 북으로 보낸 양씨는 한국 입국을 오랫동안 허락받지 못하다 50년 만에 고향을 일주일간 방문할 수 있었다. 작가는 양씨의 삶에서 엇갈린 여러 경계의 교집합 속에 놓여 있는 근대 한국의 디아스포라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달에 ‘해로(海路)’를 주제로 전시를 열었어요. ‘유영’에 출품했던 것들을 비롯해서 재일제주인 문제를 다뤘던 그림들, 그리고 4·3 때 사라진 마을이 부동산 개발로 들썩이면서 잘린 나무들이 주제였죠. 바닷길을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했고요.

 

저 배는 가는 것일까요? 오는 것일까요? ‘무지개’가 어떤 꿈의 실체라면 ‘강철 무지개’는 꿈이 현실이 되는 신념이 아닐까요? 그래서 이 그림은 제주 사람들을 태우고 수없이 떠나갔던 과거의 흐릿한 흑백의 군대환이 이 현실계로 넘어와 다시 제주로 귀환하는 장면이 아닐까 해요.

 

글_김종길 경기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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