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어주는 남자] 사랑을 위한 각서 5 - 담쟁이덩굴 - 강형철
온몸으로 시멘트 담을 움켜쥐고
간신히 기어오른 저 하늘 끝
늦은 밤을 위태롭게 걸어가는
나를 위한 한마디
잠언
나는 온몸이 뿌리다.
《야트막한 사랑》, 푸른숲, 1993
사랑이란 무엇인가? 참으로 곤혹스런 물음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서 애를 태우기도 하고 급기야는 미워하고 원망하는 지경에 이르러 헤어지게 되는 것이 사랑의 서사(敍事)일 것이다. 안다고 해도 결코 알 수가 없는 난제(難題)가 바로 사랑이다.
또한 원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알 수도 없고 소유할 수도 없는 사랑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했는지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사랑의 아픔이 무엇인지를 속속들이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비극적 운명을 예감하면서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라는 노랫말은 일견 통속적(通俗的)이다. 그렇지만 가슴에 와닿는다. ‘눈물의 씨앗’이라는 비유에는 삶이 곧 사랑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사랑은 삶이라는 텃밭에 떨어진 눈물의 씨앗이다. 고통의 시간을 지나 희망의 꽃을 피우려는 씨앗들의 의지, 그것이 바로 사랑의 표정일 것이다.
강형철 시인의 〈사랑을 위한 각서 5-담쟁이덩굴〉은 사랑에 대한 강하고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다. 사랑이 아니면 이 세계를 돌파해나갈 수 없다는 의지를 ‘각서’라는 단어를 통해서, 그리고 ‘담쟁이덩굴’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확고히 다진다. 시멘트 담을 움켜쥐고 하늘을 향해 기어오르는 ‘담쟁이덩굴’을 보며 자신의 위태로움을 점검하는 시인의 모습은 단단하기 그지없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해 혹은 자신의 숭고한 신념을 사수하기 위해 스스로를 잠언으로 무장하여 훈계하는 모습은 엄하고도 매섭다. 담쟁이덩굴처럼 온 몸으로 기어 하늘로 오르려는 사랑의 의지는 다름 아닌 삶의 치열성이다. “나는 온몸이 뿌리다.”라는 시인의 선언은 어떤 난관이라도 뚫고 나가겠다는, 즉 자신이 보듬고 가야할 사랑에 대한 준칙이자 각서라 할 수 있다. ‘온몸이 뿌리’라는 비유는 정말 놀랍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몸이 꽃이 되는 사랑의 시간을 희망하고 기대한다. 그러나 사랑이 그렇게 순탄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알 것이다.
치열함이 없는 사람은 사랑을 이룰 수 없다. 치열함은 사랑을 지켜내는 힘이고 뿌리다. 프랑스의 문호 스탕달(Stendhal)은 “사랑이란 자기가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해주는 상대를 되도록 가까이서 보거나 만지거나, 혹은 모든 감관을 통해 감지함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일이다.”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까이서 만지고 보기 위해서는 강인해져야 한다. 지켜내지 못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받기만 하고 주지 못하는 사랑도 사랑이 아니다. 꽃의 화려함보다 뿌리의 강인함 속에 사랑의 결실이 있지 않을까?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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