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구두닦이 老人, 세상을 개탄하다

변평섭
변평섭
우리 동네 우체국 앞 큰 길가에 구두를 수선하는 한 평 짜리 가건물이 있다. 그 안에서 70대 노인 한 분이 열심히 구두를 닦거나 구두 뒤꿈치를 수리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참 진지하다. 닦은 구두를 작은 선반 위에 가지런히 놓은 다음 하얀 종이로 그 위를 덮는다. 그 모습이 너무 정성스럽다.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으면 깨끗이 닦은 손님 구두에 먼지가 묻어서야 되겠냐는 것이다.

 

‘손님 구두에 먼지를 묻혀서는 안된다’는 구두닦이 노인, 그래서 언제나 일거리가 떨어지지 않는다. 좀 쉴 시간에는 신문을 펼쳐 들고 큰소리로 읽기도 하는데 특히 노인이 못마땅해 하는 기사는 패륜사건이나 사람의 명예를 함부로 다루는 기사다.

 

가령 자식이 부모를 살해했다든지, 난잡한 성폭력 같은 것을 너무 자세히 다루어서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것이다. 특히 사이버 언론까지 확대되면서 이와 같은 명예훼손이나 사회적 혐오 기사가 도를 넘고 있음을 개탄한다.

 

최근에 있었던 두 가지 사건만 해도 ‘닦은 구두에 흰 종이를 덮는 노인’의 눈에는 마뜩잖게 보일 것이다.

 

하나는 지난 9월 서울 신사역에서 중랑공영차고까지 가는 240번 시내버스에서 아이만 내려놓은 엄마가 소리쳐도 버스기사가 그냥 달렸다는 뉴스다. (물론 아이엄마는 다음정류장에서 내려 아이를 찾았다.)

 

아이의 엄마가 인터넷에 민원을 제기 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진 이 사건은 삽시간에 ‘버스기사가 차를 세우라는 아이 엄마에게 욕설을 했다’는 등, 없는 사실까지 보태져 SNS를 달구었다.

 

그런데 경찰과 서울시의 조사결과는 어땠는가? CCTV 판독에서 이미 아이엄마가 차를 세워달라고 했을 때는 버스가 차로를 바꿔 차 문을 열 경우 위험한 상황이었으며, 차 안도 시끄러웠고, 운전기사의 욕설도 없었다는 것이다.

 

뒤늦게 아이 엄마는 버스기사에게 사과를 했지만 이미 버스기사는 부도덕한 인물로 마녀 사냥식 비난을 받았고 그 정신적 고통은 형언할 수가 없는 상태.

 

못을 빼도 못 자국은 남는 법.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수난을 당하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재판도 받기 전에 ‘죄인’의 낙인이 찍혀 파김치가 되어 버리는가? 나중에 무죄나 무혐의가 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최근 21년 전 자살한 가수 김광석씨의 죽음을 둘러싸고 그의 부인 서모씨가 마녀사냥식 난타를 당했다.

 

한 인터넷 언론 관계자가 만든 영화 ‘김광석’이 발표되면서 갑자기 부인 서모씨는 친딸의 살인 의혹까지 받아 가며 계속 언론을 타고 있는 것. 심지어 난타의 무대에는 국회의원도 등장하여 의혹의 판을 키웠다.

 

검찰은 서씨의 출국금지 조치를 했고 마침내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서씨에 대한 수사를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1월에야 끝난 경찰의 수사는 서씨에 대한 모든 혐의를 ‘무혐의’로 종결 지었다.

 

서씨는 자신을 그렇게 몰고간 인터넷 언론인에 명예훼손과 손해배상을 신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의 찢길 대로 찢긴 인격모욕과 억울한 누명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 질까?

 

다행인 것은 서씨의 경우 마녀사냥의 칼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며 결국 ‘결백’을 밝힌 것이다.

 

많은 사람의 경우, 범죄의 누명을 쓰고는 견디지 못하여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어느 여학교 선생님이 제자를 성추행했다는 혐의로 조사가 시작되고 언론에 보도되자 결백을 주장하며 죽음을 택했다.

 

정말 구두를 닦고 그 위에 티끌 하나라도 묻지 않게 흰 종이를 덮는 노인처럼, 인간의 존귀한 명예를 난도질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변평섭 칼럼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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