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암평아리냐? 수평아리냐?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병아리들이 어찌나 귀엽던지, 호기심을 참지 못한 기자는 결국 당시 과자 1봉지 가격이었던 100원을 과감히 투자해 병아리를 집으로 데려왔다. 지극한 정성을 쏟은 탓인지 병아리는 어느새 닭이 되어가면서 더이상 집에서 키울 수 없게 됐고, 마침 학교에서 운영 중인 동물사육장에 기증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결과적으론 잘 키운 공로(?)로 상장과 맞바꾸며 위안을 삼았지만, 병아리는 이렇게 아쉬움 가득한 첫 반려동물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얼마 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풍경을 한 초교 앞에서 우연히 목격했다. 아직도 병아리를 판매한다는 사실에 놀란 것도 잠시, 병아리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기자의 향수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문득 “암컷은 200원”을 외치던 병아리 장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에 기자는 암수 구별법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1일 ‘병아리 감별사’가 되어보기로 했다.
■ 작업장 진입부터 심한 악취… 하루 1천 수 감별 ‘고역’
대한양계협회로부터 소개받은 병아리 감별 전문가 곽용숙 꼬꼬감별 대표(61ㆍ여)와 체험을 위해 이른 아침, 안성시 일죽면의 한 부화장에서 만났다. 인사를 마친 곽 대표는 하루 일정과 반드시 지켜야 할 주의사항부터 운을 뗐다.
항문을 열어 생식기의 모습을 보고 암수를 구분하는 만큼, 인내심과 침착함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미 사전 조사(?)를 통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지만, 작업장에 진입하는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분뇨 냄새에 고된 하루가 예고됐다.
이날 체험 도우미로 나선 곽용숙 대표는 30년 경력의 베테랑 전문 감별사로 국내에 단 2명만이 소지했다는 ‘고등감별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감별 의뢰가 들어오면 팀을 구성해 감별작업에 들어가고 있으며, 교육을 통해 제자도 육성하고 있다. 그의 능력은 이미 해외에서도 인정받아 간간이 미국이나 유럽 등지로 파견을 나가는 등 관련 업계에선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먼저 곽 대표의 지시에 따라 부화기에서 갓 태어난 병아리를 꺼내는 첫 작업이 진행됐다. 감별사는 부화장에 가면 가장 먼저 부화기내 병아리 상태부터 점검해야 한다. 실수로 병아리를 부화기에서 늦게 꺼낼 경우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건조해져 감별이 쉽지 않다고 한다. 처음에는 손을 너무 떨어 병아리를 잡기조차 힘들었지만 편하게 하라는 곽 대표의 조언대로 미리 준비된 상자에 5마리씩 옮기는 작업을 진행했다.
익숙해질 즈음 자리를 옮겨 ‘탈분 작업’이 이어졌다. 항문 감별을 위해선 먼저 등뼈 아래 대장 부위를 손으로 눌러 배내똥을 빼줘야 한다. 이 강제 탈분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감별 도중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곽 대표의 말이 기자를 섬뜩케 했다.
아니나 다를까 탈분 작업은 말 그대로 고역이었다. 200여 마리 병아리의 배내똥을 강제 탈분시키면서 손은 엉망진창이 됐고, 겉에 입은 작업복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나마 얼굴로 튀지 않은 사실에 위안을 삼으며 병아리들과 힘겨운 사투를 벌였다.
“암수를 정확하게 판별하기 위해선 항문을 잘 여는 게 관건이에요.”
곽 대표의 설명에 따라 먼저 왼손 세 번째 손가락과 네 번째 손가락 사이에 병아리 목을 넣어 잡은 뒤, 뒤집은 상태에서 오른손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항문을 열어 안에 보이는 생식기 모양을 확인했다. 생식기 모양이 뚜렷이 보이면 수평아리, 그렇지 않으면 암평아리다.
처음엔 설명을 새겨듣지도 않고 암중모색을 거듭했지만 생소한 작업이 녹록지 않았다. 같은 자세로 앉아 몇 시간 동안 병아리와 승강이를 벌이자니 눈은 침침해지고 목과 등이 뻐근해져 왔다. 잠깐 쉬었다 하면 현기증이 나기도 하고,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하는 탓에 식사나 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더욱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해서 피곤도 역시 높았다.
기자는 서툰 실력으로 몇 시간 동안 겨우 100여 마리를 감별했지만, 일반 감별사는 시간당 900수~1천 수 병아리의 암수를 구분하며 하루 평균 1만 수 병아리의 암수를 감별해야 하는 고된 작업의 연속이었다.
■ 영국선 평균 ‘6천700만원’ 고연봉… 해외 진출 유망 직종
우선 ‘병아리 감별사’는 이름부터 생경한 느낌을 주지만 기술만 있다면 세계시장 진출도 가능한 유망 직종 중 하나다. 곽 대표는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충분히 먹고살 만한 직업”이라며 “별도의 정년이 없고, 기술을 배우고 나면 영구직으로 보장된다고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특히 최근엔 영국에서 병아리 감별사 연봉이 약 6천700만 원에 육박하지만 일할 사람을 구하기 힘들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도 있다. 이와 더불어 해외에선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정교한 손재주와 빠른 손놀림을 선호하는 실정이다.
병아리 감별사는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 소지자로 교정시력 0.8 이상, 양손 모두 사용 가능하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도전할 수 있다. 실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해외 연봉 수준은 5천~8천만 원이며, 국내에선 최대 6천만 원에 일당 25~40만 원 선이다.
전도유망하지만 국내에서 병아리 감별사는 여전히 이색직업이라는 인식 속에 젊은 세대의 외면을 받으면서 극심한 ‘인력난’과 ‘고령화’를 겪고 있다. 희망자가 터무니없이 부족해 수요가 급감하면서 양계협회에서 주관하는 감별사 자격증 시험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곽 대표는 업계 침체의 이유로 여러 가지 제약이 있지만, ‘병아리 공급’을 가장 큰 문제로 언급했다. 감별사 양성 학원에 교육용으로 보급되는 약추(弱雛)가 마리당 100원에 육박하고 있어 끊임없는 반복 연습이 필요한 학원 입장에선 큰 부담이 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 학원도 점차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곽 대표는 “과거엔 해외에 파견된 감별자가 대부분 한국사람이었는데 최근 들어 인도와 중국 등 다른 나라에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면서 “정부가 AI 사태로 공급을 차단하면서 업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고 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감별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을 위해 나라에서 버려지는 병아리를 저가로 책정해 (학원에)원활한 공급을 해줘야 한다”면서 “여기에 양성 기관도 지역별로 마련해 준다면 청년 실업률 해소와 더불어 해외 진출로 인한 외화를 벌 수 있어 국가의 일익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 병아리 감별사가 되기 위해선 “자신을 먼저 알아야”
협회에서 주관하는 자격증 시험이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으면서 현재는 학원을 통해 감별 기술을 습득한 뒤 공식적인 병아리 감별사가 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고 있다. 고액 연봉에 시험까지 없어지면서 한 때 지원자들이 몰리기도 했지만, 중도포기한 수강생이 태반인 만큼 단호한 결심이 있어야 한다. 그만큼 쉽지 않다는 뜻이다. 또 시간과 금전적인 투자는 필수다.
곽 대표는 “‘무조건 돈이 되겠다’, ‘괜찮겠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단순한 호기심에 찾아왔다가 낭패를 보는 분을 자주 봤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라고 말하고 싶다”며 “단 1주 만이라도 학원에서 직업에 대해 이해하고 실습을 통해 적성과 소질이 맞는지,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지를 스스로 잘 판단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분야든지 젊은 사람들이 많아야 발전하지 않겠느냐”면서 “끈기와 도전을 통해 자부심을 찾고, 관련 업계를 함께 발전시켜 세계적인 명성도 함께 되찾고 싶다”고 말했다.
남양주=하지은기자
사진=오승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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