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남경필 式 판짜기 정치’ - 관전記

조용하게 유리한 판 만드는 정치력
이번에는 조기 출마 선언 등 판이해
보수통합 선점용 또 다른 판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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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심재덕은 버거웠다. 정당도 없이 두 번이나 시장을 했다. 문화(文化)로 시민을 한데 묶어냈다. 억울한 누명까지 무죄(無罪)로 벗었다. 이런 그가 총선에 나서겠다고 했다. 현역 국회의원에게는 위협이 분명했다. 팔달구가 유력한 지역구로 거론됐다. 출신 초등학교가 거기 있었고, 화성 복원의 중심이었고, 구(舊) 표심의 상징이었다. 거기 재선(再選)의 남경필 의원이 있었다. 언론에는 더 없는 흥밋거리였다. 다가올 빅매치에 모두가 침을 삼켰다.

하지만, 남 의원은 태연했다. 심 전 시장과의 맞대결 구도는 입에 담지도 않았다. 답답해진 정치부 기자가 물었다. ‘심 전 시장의 팔달구 출마설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이었을 게다. 그가 한 당시 답변이 2004년 지면(紙面)에 남아 있다. “심 전 시장이 어려운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후 선거판은 희한하게 그의 말처럼 됐다. 심 전 시장이 팔달구를 피했다. 남 의원이 쉽게 갈 수 있는 대진표가 짜여졌다. 그 해 당선된 수원지역 현역은 남 의원 하나다.

비슷한 예(例)가 많은 데, 2014년 선거판도 그랬다. 당(黨)이 그에게 출마를 권했다. 이른바 중진 차출론이었다. 그는 답하지 않았다. 되레 거꾸로 갔다. ‘(경기지사 출마설에) 문을 닫아 달라’ ‘다른 후보들을 열심히 돕겠다’며 뺐다. 촉박한 시기엔 외국으로 떠나 당을 몸 달게 했다. 그 사이 몸값이 치솟았다. 출마도 안 한 그의 여론조사가 50%를 넘어섰다. 막판에 그가 출마를 선언했고, 이미 경선은 의미 없었다. 그의 ‘판짜기 정치’는 또 그렇게 성공한다.

‘남경필식 판 짜기 정치’가 그렇다. 예선(豫選)에 유독 강하다. 결코, 서두르지도, 안달 내지도 않는다. 조용히 자신의 판을 만들어간다. 그렇게 기획된 본선(本選)은 매번 ‘다 된 밥’이다. 남 뛸 때 그가 하는 일은 ‘옆 동네 지원’이다. 그랬던 그가 두어 달 전엔 달랐다. 서둘렀다. 일찌감치 도지사 재도전을 공개했다. 측근들에게도 그리 알고 뛰라고 지시했다고 소문냈다. ‘심재덕 도전설’에 느긋하던 모습, ‘중진차출론’까지 외면하던 모습과 달랐다. 왜였을까.

그 궁금증을 풀어 줄 힌트가 요 며칠 흘러나온다. 보수 통합 정국에서 그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엊그제는 같은 당 동료 유승민 의원을 몰아세웠다.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건 독선이다.” 다른 길을 갈 수 있다는 예고다. 다음 날은 한국당 홍준표 대표를 추켜 세웠다. “대표직을 걸고 국정농단 세력과 싸우고 있다…새로운 보수의 출발을 의미한다.” 함께 갈 수 있다는 신호다. 느닷없던 출마선언의 이유를 짐작케 한다. 보수대연합의 중심을 꿈꾸는 듯하다.

가정해 보자. 오늘 도지사 선거가 치러진다면? 민주당 후보가 40~50%로 압도적 당선이다. 남 지사는 10~15%로 2등이다. 3등은 7~9%를 얻는 정의당 후보다. 한국당 후보는 5등 자리에야 이름을 올린다.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는 통계는 없다. 보수엔 최악의 판이다. 판을 뒤집을-그나마 시도해 볼만한-패라야 하나뿐이다. 보수를 왕창 끌어 모으는 대통합이다. 어느새 그런 대통합 중심에 ‘2등’ 남 지사가 자리하고 있다. 팍팍 바뀌는 정치적 몸값이다.

만일 두어 달 전-그에게 이런저런 악재가 겹칠 때-침묵하고 있었다면? 정치는 그를 불출마자로 제쳐 놨을 것이고, 내년 선거를 무주공산 싸움이라 정의했을 것이고, 여론조사에서 한참 뒤 쪽에 남았을 것이다. 내다본 듯하다. 그래서 온갖 비난을 듣는 와중에 역으로 연임도전을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해서 유력 후보로 남아 있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2등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20년 선거무패, 남경필의 판짜기 정치는 이번에도 성공하는 것인가.

참으로 부질없는 것이 정치 예측이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써대는 게 언론이다. 그래서 그렇게 부질없는 예측을 또 한 번 꾸역꾸역 써 보면 이렇다. -남 지사는 정계개편 중심에 올라탈 것이다. 이런저런 가능성을 보여주며 몸값을 올려 갈 것이다. 결국엔 보수 대연합의 유력 후보가 될 것이다. 그쯤에 가면 본선을 계산할 것이다. 이길 거라고 보이면 끝까지 갈 것이고, 질 거라고 보이면 양보할 것이다.- 남 지사는 아직 진짜배기 연임도전을 결정하지 않았다.

(다들 관심 없다고는 하는데, 현직 도지사니 그럴 수만도 없는 ‘남경필식 판짜기 정치’ 관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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