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우리는 긴 시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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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휴일 저녁에 TV를 보다가 한 홈쇼핑 광고를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홈쇼핑에서 보험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쇼호스트들이 나와서 자신들의 보험 상품을 설명하는 와중에 ‘120세까지 보장합니다’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화면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100세도 아니고 120세라니! 문제는 보험회사에서 120살까지 보장하는 상품을 열심히 판매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살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우리가 앞으로 얼마만큼 건강하게 살 것인가에 대해 알고 싶을 때, 보험회사의 말은 다른 어느 전문가의 말보다 믿을 만하다. 지금까지 경험을 통해 우리는 보험회사의 보장 기간 안에는 보통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보험이 필요해질 나이가 되면 항상 보장기간이 지나버렸던 경험들을 떠올려보라. 보험회사는 평범한 사람이 몇 살까지 별다른 일 없이 살아갈 것인가를 귀신같이 계산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시기를 잘못 계산하면 회사가 파산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전례 없이 엄청난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보통 30년을 한 세대로 계산하는데, 앞으로 우리는 4~5세대를 경험하게 됐다. 내 자식의 자식의 자식의 자식의 자식까지 보며 살게 된 것이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긴 시간이다.

 

자, 그럼 이렇게 긴 시간이 주어졌으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오래 살게 됐으니 돈을 더 많이 저축해야 할까? 120살이 아니라 150살까지 보장하는 보험을 찾아 가입해야 할까? 높은 이율이 보장되는 연금을 더 많이 가입해야 할까? 지금까지는 보통 이런 경제적인 관점만으로 길어진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아주 틀린 방식의 준비는 아니지만 이런 식의 관점은 다분히 물질적 지속성만을 반영한 것이다.

 

사실 긴 시간이 주어지게 되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인 것,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만약 무슨 일이 있어도 결혼생활을 30년간 유지해야 하는 부부와 90년간 유지해야 하는 가상의 두 부부가 있다고 치자. 이 두 부부는 결혼생활에서, 배우자를 고르는 관점에서 어떤 차이를 보일까? 30년은 과거 우리 부모 세대가 유지했던 결혼생활 기간이고, 90년은 지금 우리 세대가 유지해야 하는 결혼생활 기간이다.

 

아마 30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부부에게는 경제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하지만 90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부부에게도 가장 중요한 요소가 경제력일까? 물론 경제력은 여전히 중요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배우자와의 신뢰와 믿음, 사랑, 헌신 등이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지 않을까? 이런 것이 없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긴 시간이 주어지면 결혼에 대해 보다 본질적인 가치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똑같은 행위라도 긴 시간이 주어지면 그 행위에서 보다 본질적인 것이 부각된다는 것이다. 이제 너무 긴 시간을 부여받은 우리는 남은 삶을 이런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 만나는 사람, 가족과의 관계, 내가 속한 사회에서 보다 본질적이고 가치로운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런 준비를 하지 못하고 짧은 시간을 살았던 삶의 관점을 유지한다면 우리는 그 긴 시간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금 많은 노부부들이 황혼기에 예상치 못하게 남아 있는 긴 시간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혼하며 지속성을 잃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조성화 한국교원대 환경교육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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