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1990년 통일 축구. 2. 1991년 세계 청소년대회 남북단일팀 모습. 3. 제2회 아리스포츠컵 2015 평양국제대회를 참가한 선수단.(2015.8.20 양각도 호텔) 4. 2015 평양국제대회 환영만찬에 함께 한 남북한 선수들. 5. 2002년 남북 통일축구 경기후. (서울월드컵경기장)
■ 1990년 남북 축구대표팀 교류전… 해빙 무드
노태우 대통령, 김일성 주석의 집권시기인 1990년 10월 11일과 23일 두 차례에 걸쳐 남북한 축구대표팀이 서울과 평양에서 축구교류전을 열었다.
이 대회의 목적은 스포츠 교류를 통해 민족의 동질감을 회복하고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였다.
1990년 제11회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하던 중 남한의 장충식 선수단장과 북한의 김형진 선수단장은 9월 29일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남북(북남)통일축구대회’를 갖기로 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남한팀은 이재명 단장, 박종환 감독으로, 북한팀은 김유순을 총단장으로 하여 각각 대표팀을 구성했다. 1차전은 1990년 10월 11일 오후 3시에 평양의 5·1경기장(능라도 경기장)에서 15만 명에 이르는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경기는 2:1로 북한이 이겼다. 2차전은 1990년 10월23일 서울의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려 남한이 1:0으로 이겼다.
1차전 때 당시 월드컵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이회택 감독이 고문자격으로 동행해 북한 축구인인 박두익의 주선으로 아버지 이용진을 만나 이산가족 상봉으로 이어졌다. 비록 이 대회는 정례화되지 못하고 중단되었지만, 스포츠 교류의 차원을 넘어 단절되었던 남북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했다.
1991년에는 제6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20세 이하)에서 남북 단일팀을 구성, 8강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어 9년 만인 1999년(김대중,김정일 시기) 9월12∼13일 20만 명의 관중이 참가한 가운데 평양에서 ‘통일염원남북한 노동자축구대회’가 열렸다.
대한축구협회의 제안으로 2000년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경평축구대회 정례화에 대해 합의했으나 경기는 열리지 못했다. 그러다 2002년 9월 7일, 12년 만에 국가대표의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광복 60주년 하루 전날인 2005년(노무현, 김정일 시기) 8월 14일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8ㆍ15남북통일축구대회가 국가대표 친선경기로 열렸다. 이날 관중들은 한반도기를 손으로 들고 깃발 파도타기를 하는 등 감동을 연출했다. 그러나 2008년(이명박, 김정일 시기) 이후 남북관계가 냉각되면서 남북 간 국가대표급 체육교류는 중단되었다.
■ 한반도 ‘新냉전’… ‘유소년 축구’ 교류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남북 유소년축구 교류는 교류가 중단된 시기에도 10여년 이상 계속돼 왔다.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민간부문에서 사단법인 남북체육교류협회(이사장 김경성)는 2006~2016년 까지 모두 16차례의 남북 유소년 축구 교류를 이뤄냈다. 축구경기는 주로 제3국(중국)에서 진행됐다. 때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경기도, 인천광역시, 강원도 등)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다. 때로는 협회 임원들의 사비를 털어서도 계속됐다.
남북체육교류협회는 ‘스포츠 데탕트 코리아’를 모토로 삼아 “스포츠교류는 어떠한 군사적, 정치적 갈등속에서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1회성(이벤트성) 스포츠교류는 ‘개최-중단’이 반복됨으로써, 오히려 화해의 조건으로 이용돼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논리다.
정치상황과는 무관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정부를 설득했고, 이해를 얻었다. 이 협회가 주최한 교류는 2006년 5월 북한측의 4.25체육단과 최초로 민간부문에서 ‘남북체육교류계약서’를 체결하면서 시작됐다.
계약 내용에 따르면 ▲북측 4.25체육단은 매년 2회 남측 축구팀을 평양에서 개최하는 축구대회에 초청하고 ▲북측 4.25체육단은 남측의 남북체육교류협회가 주최하는 남측 축구대회에 매년 2회 참가 ▲양측은 매년 겨울 제3국에서 공동 동계훈련 및 축구대회를 열도록 했다.
이에대해 노무현 정부도 승인하고, 통일부 남북협력기금 5년간 지원(매년 10억 4천만 원)도 승인했다. 남북체육교류협회는 2006~ 2008년까지 남한 선수단을 6번 평양대회에, 같은 기간 동안 북한 선수단을 4번 남한 대회에 참가시켰다.
그러나 2008년 하반기 MB정부 이후 현재까지 재정지원은 중단됐다. 이에 남북체육교류협회는 자체자금 및 경기도, 인천광역시, 강원도, 연천군 등의 후원을 받아 유소년 정기교류전을 개최했다.
2009~2015년, 후원기관에 따라 7년간 중국의 쿤밍ㆍ하이난ㆍ광저우ㆍ성도 등에서 매년 ‘남북 유소년 축구 정기교류전’을 이어 나간 것이다. 때로는 대회명도 후원기관에 따라 변경되었다.
중국에서 인천 평화컵 남북축구대회도 열었다. 이는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 북한선수단 참가 계기가 되었다.
군사적 포격 상황 직후에 추진되었던 유소년축구 14차전(2014.11 경기도 연천, 제1회 아리스포츠컵대회)과 16차전 (평양, 제2회 아리스포츠컵대회)는 의미가 더욱 깊다. 지난 10년간 남북체육교류협회와 북한 4.25체육단은 신뢰가 형성되어, 양측은 2015년 12월 두번째 남북체육교류 계약을 이뤄냈다. 유소년축구를 남여 청소년축구교류, 프로축구교류, 마라톤교류, 탁구교류, 양궁교류로 넓히기로 하는 성과를 냈다.
남북체육교류협회는 올해 가을에도 17차 남북 유소년축구 교류전(제3회 아리스포츠컵 대회)을 평양 등에서 개최 할 예정이다.
김신호기자
인터뷰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
‘17차 유소년축구 교류전’ 올 가을 평양서 열려… 통일 밀알 기대
독일의 통일은 데탕트에서 출발했습니다. 1971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1969년 화해와 협력의 동방정책을 펼쳤고, 그의 사망 3년전인 1989년 마침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독일인들은 장벽 앞에서 ’빌리 브란트‘의 이름을 외쳤습니다.
스포츠교류는 결코 군사적, 정치적 갈등의 영향을 받아선 안됩니다. 매년 정기교류가 진행돼야 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상호 신뢰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북정책은 눈앞에 현상에 일회일비 해선 안됩니다. 보이는 것보다는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에 촛점을 두어야 합니다. 일관된 정책과 긴 여정속에서 효과가 나옵니다. 남북은 모두 프로축구팀(갑급리그)을 운영하고 있습니다.프로선수의 상호 스카웃과 중계 등도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정부는 지난 7월 베를린 선언을 발표 했습니다.강약의 투트랩 정책이 꼭 성공하길 기대합니다. UN의 제재내용에도 스포츠교류는 예외로 하고 있습니다. 올해 가을 남북 유소년 정기교류 17차전(평양)이 추진됩니다. 스포츠가 평화통일을 이끄는 중요역할을 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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