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탈원전 정책 포기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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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방향에 따라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중단 문제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다. 이제 본격화될 찬반논의의 귀추는 국제적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현재 전 세계에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 나라는 30개국. 이 가운데 독일, 벨기에, 스위스, 대만 등 4개국이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여파로 탈원전을 선언하고 이행해가고 있다. 반면 일본은 원전사고 후 원전 제로 정책을 선언했으나 불과 3년 만에 친(親)원전으로 복귀했다. 그래서 일본은 탈원전 실패 사례로 인용되곤 한다. 원전 찬반을 떠나, 에너지자원 결핍 등 여건이 우리와 흡사한 일본의 탈원전 정책이 번복되는 과정과 그 함의를 살펴본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현장은 처참했고, 이는 곧 반(反)원전 정서로 이어졌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74%가 원전의 단계적 폐지에 찬성했다. 이에 당시 민주당 정부는 2011년 7월 탈원전 정책 검토를 선언했고, 2012년 9월에 2030년까지 원전 제로를 구현한다는 혁신적 에너지전략을 발표했다. 핵심은 △40년 이상 가동한 원전 폐쇄 △원전의 신·증설 금지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등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혁신 전략을 받쳐주지 못했다. 운전 중인 50기 원전이 안전점검을 위해 차례로 정지되었는데 점검을 통과한 원전도 주민들의 반대로 재가동이 어려웠다. 그 결과 2012년 5월에는 모든 원전의 가동이 중지되기도 했다.

 

전력생산의 27%를 차지했던 원전이 이렇게 되자, 안정적 전력공급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광범한 전기절약 운동, 유휴 화력발전소까지 풀가동 등으로 전력 대란은 피했지만, 화력발전을 위한 연료 수입 급증은 전기요금 상승으로 이어졌고, 전기를 많이 소모하는 산업은 한국 등으로 해외이전을 추진했다.

 

이처럼 전기요금 등에 대한 국민의 불안과 재계 불만이 높아진 가운데 2012년 12월 총선이 치러졌고, 총선 쟁점은 원전 찬반이었다.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 집권 민주당과 친원전을 주장한 자민당의 대결이었다. 

결과는 친원전 자민당의 압승. 국회내 친원전 의원은 총선 전 132명에서 346명으로 급증하고, 반원전 의원은 339명에서 123명으로 격감했다. 자민당 연립정부는 원전 재가동을 적극 추진하면서 2014년에 탈원전 정책을 사실상 포기했다. 지난 6월에는 일본 경제산업성이 향후 에너지 기본계획에 원전 신·증설과 노후 원전의 재건축 필요성도 명기하는 것을 검토한다고 했다.

 

일본의 탈원전 정책이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좌절한 배경은 무엇일까? 탈원전 정책은 보통 수십 년에 걸쳐 수령이 다한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면서 대체 에너지를 확충해 나가게 된다. 그런데 일본의 탈원전은 선언 당시의 특수사정에 따라 거의 모든 원전이 단기간에 가동 중단되는 바람에 전력의 수급불안이 당장 현실화되면서 국민을 안심시킬 중장기적 대책이 작동할 수 없었던 한계 때문이었다. 우리의 탈원전 추진환경은 이와는 다르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 국민이 원전 위험을 알면서도 선거과정에서 친원전을 지지한 것은 향후 탈원전 추진에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탈원전 정책의 성공 여부는 국민의 공감과 지지에 달렸고 이를 위해서는 탈원전이 국민의 전기사용편익을 크게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형원 前 주크로아티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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