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몽골 항쟁기 고려의 39년 도읍지
청자·종이·인쇄술 등 찬란한 문화유산 꽃피워
역사·문화·경제 요충지 넘어 ‘통일시대’ 채비
인천은 남북 통일시대를 대비해 고려의 도읍이었던 강화도와 개성 중심으로 남북간 역사·문화·경제 교류를 확대하는 ‘강도(江都)의 꿈’을 준비하고 있다. ‘강도’는 고려가 개경에서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며 강화도를 새롭게 부른 지명이다.
‘강도(江都)의 꿈’은 궁극적으로 고려시대 역사를 거슬러 오르며 강화와 개성, 남한과 북한간의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왕건(王建)은 918년 6월 고려를 창건하고, 919년 1월 송악의 남쪽에 도읍을 정해 그 군을 승격시켜 개주(開州·현재의 개성)라 했다. 고려 조정은 몽골군이 1231년 11월 침략을 시작한 지 7개월만인 1232년 6월 개경에서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다.
강도 시기는 우리 역사에서 갖는 의미가 크다.
고려왕조는 개경-해주-강화 벨트를 정치·경제적 중심 지역으로 활용했다.
고려왕조는 일찍부터 조운제와 역제로 대표되는 교통·통신망 체계를 갖추고 있어 개경을 중심축으로 수운을 통한 물자운송체계를 마련했고, 대몽 항전 당시에도 강화도에서 이 체계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었다.
당시 동아시아에서 호평을 받으며 높은 기술수준을 자랑하는 청자와 고려지(高麗紙), 인쇄술, 대장경 조판과 같은 수준 높은 제품도 이 시기에 나왔다.
고려는 결국 몽골과 강화를 맺고 그 간섭을 받았지만, 끈질긴 항전을 통해 몽골로부터 국가·민족체의 자주성만은 지킬 수 있었다.
강화는 역사적으로 수도를 가까이에 두고 바다를 끼고 있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교류의 길목으로 송나라와 아라비아 사신과 물자가 인천을 찾았다.
강화, 이제는 개성과 고려를 만나고, 나아가 남북 통일 준비를 위한 첫 걸음을 준비하고 있다.
김락기 인천문화재단 강화역사문화센터장은 “인천은 평화의 길로 가야 한다”라며 “이 길을 통해 연결되는 지점에 북한이라는 지역을 시야에 넣어두면 인천은 평화의 길을 닦는 도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백승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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