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인 까닭에 중ㆍ고등학교 학생팬보다는 오히려 20대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60대 어르신들까지 성인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1시간 여의 기다림 끝에 입장했고, 선수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체육관 내에서 경쟁까지 벌어지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이날 카자흐스탄과의 경기에는 주말이나 휴일이 아님에도 4천200명 수용의 체육관에 3천500여 명이 입장했다.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남자 경기도 아닌 여자 경기에 이처럼 수많은 배구팬이 몰린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지만 이것은 서곡에 불과했다.
중복인 22일 콜럼비아의 토요일 경기에는 수용 인원을 훌쩍 넘어서 5천명이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찼고, 23일 폴란드와의 마지막 경기가 열린 날에는 수원지역에 60㎜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호우특보가 내려졌지만 역시 5천여 관중이 운집했다.
수원에 ‘배구 광풍(狂風)’이 몰아친 것이다. 5천여 팬들은 김연경의 일거수 일투족에 환호함은 물론, 강타가 터질 때마다 괴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일부 팬들은 김연경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 경기장까지 내려왔고, ‘배구 여제’가 경기장을 떠나는 순간까지 선수단이 탄 버스를 에워싸며 환호했다. 국내 여자스포츠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수원 시리즈의 덕분에 지방자치단체들이 다투어 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대회와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를 유치하려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하지만 이처럼 배구팬들의 뜨거운 열기와 이른바 ‘황금세대’로 대변되는 여자 대표팀 선수들의 활약으로 배구붐이 일고 있음에도 불구, 대한배구협회의 한심한 행정이 연이어 불거지면서 배구팬들의 비난을 사고있다. 우리 여자 대표팀이 2년동안 그랑프리 대회에 나서지 못하고 2그룹에서 경기를 펼쳐야했던 것이 협회에 돈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소식에 배구팬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0만달러의 참가비가 없어 지난 2년동안 그랑프리대회에 참가하지 못한 것도 서러운데 비용 때문에 절반 선수들은 마지막 체코 결선시리즈에 항공기의 비지니스석이 아닌 이코노미석으로 원정을 간다고 전해지면서 협회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사태는 결국 IBK기업은행의 찬조로 해결됐지만 실로 한심스러운 현실이다.
실망은 이 뿐만이 아니다. 당초 이번 그랑프리대회 수원 시리즈는 유치를 원하는 도시가 없어 대한배구협회 부회장을 지낸 열정의 기업인 신현삼 수원시배구협회장이 수원시에 공을 들여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대한배구협회가 요청했던 유치금이 더 늘어났고, 수원시협회는 유치 조건으로 수익금 중 일부를 지역 유소년 배구발전을 위해 지원해줄 것을 내세웠다.
당사자들 간 구두 합의한 이 조건은 결국 대회가 임박해서는 ‘모르쇠’로 백지화됐고, 이에 대회를 치르느라 동분서주한 수원시협회 관계자들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대한배구협회를 성토했다. 결국 전례 없었던 대박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 꼴이 된 셈이다. 아무리 협회 재정이 어렵다해도 지방단체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꿈나무 지원을 외면한 대한배구협회의 처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황선학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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