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국가 간에 있어서 좌석 배치는 미묘하다. 과거의 예를 소개하자면 무대는 다자 외교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는 1815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의 회의장. 회의가 있을 때면 그 당시 강국이던 프랑스가 항상 상석에 앉곤 했다. 대다수 참석 국가들도 그렇게 좌석 배치를 인식하고 있었는데, 이에 불만을 가진 한 국가가 어느 날 작심하고 일찍 회의장에 도착해 평소 프랑스가 앉던 상석 좌석을 차지한다.
이 모습을 본 다른 국가들이 회의장 내에서 “프랑스의 위상에 변화가 생겼나?”라고 소곤거리고 이를 듣게 된 프랑스는 맘이 편하지 않았다. 좌석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예인데 또 하나의 사례를 소개하자면 2016년 초 미국 중서부에 있는 일리노이 주의 주지사가 시카고에 있는 40여 개 국가를 대표하는 총영사들을 초청하여 일리노이 주를 소개하는 설명회를 개최했다.
그날 좌석 배치를 보니 주지사 옆 좌석을 중국 총영사가 차지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주지사 옆 좌석을 총영사단을 대표하여 일본 총영사가 않는 것이 상례였는데 좌석의 변화가 생긴 것이었다. 이 좌석 배치 하나가 현 국제정세에서 두 나라의 위상을 암시한다니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자리는 아무런 생각 없이 앉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앞에서 보는 것처럼 미묘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개인의 경우에도 회의나 모임을 가면 자신의 자리가 어딘지 살펴본다. 자리가 마음에 안 들면 불편해하고 전전긍긍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여러 국가가 참석하는 국제회의의 경우 좌석 배치는 매우 어렵다. 선착순으로 할 수도 없다. 그런 경우 의장국 옆자리에 서로 않겠다고 주먹다짐이라도 나면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의전서열이 있다.
의전서열은 대통령, 국왕과 같은 국가수반(Head of State), 총리인 정부 수반(Head of Government), 국제기구 대표 순으로 한다. 같은 그룹 내에서는 임기가 오랜 정상이 의전서열이 높다. 예를 들면 일본 총리는 정부 수반이기 때문에 국가수반인 한국 대통령보다 의전서열이 낮다.
국제회의를 보면 의전서열이 높은 사람이 나중에 입장하는데 왜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경우도 의전서열에 따른 것이다. 도착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의전서열이 늦어 먼저 도착하는 정상의 경우 마지막 정상이 도착하기까지 40여 분 정도 기다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과거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 당시 한국 대통령이 의장국으로 각국 정상들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영접하고 있었다. 마지막 입장 순서를 놓고 미국 대통령과 중국 주석 간에 신경전을 벌리는 바람에 이명박 대통령은 현장에서 몇 분 정도를 우두커니 서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이만큼 국가 간에 자리다툼은 치열하다. 우리나라 속담에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는 말이 있다. 일상생활에서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도 자기 자리를 잘 알고 처신하는 것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세상이다.
김상일 道국제관계대사·前 주시카고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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