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고학력 젊은 여성이 노숙자가 된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유학을 갔을 때 갑작스럽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학위를 따지 못한 채 귀국했다. 부모님의 재산은 병원비로 다 날아가서 다니던 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다. 직장을 구하려고 애써보았지만 학위가 없는 그에게까지 돌아갈 직장은 없었다. 직장을 구하려면 한국에서 학위를 따야겠다고 생각하여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비싼 등록금을 대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그래도 공부를 놓치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하루하루가 궁핍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다가 더 이상 방값을 내지 못하게 되자 정말 한순간에 노숙자가 되고 말았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내 주변에도 공부나 작품 활동을 하는 젊은 여성들 가운데 말 못 할 고통을 겪는 이들이 많아서 그 이야기가 쉽게 납득이 되었다.
그런데 여성노숙자는 건강 문제뿐 아니라 성추행, 성폭력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고 수치심과 자기혐오 등 정신적인 문제까지 겹쳐져 남성노숙자에 비해 훨씬 더 열악한 상황이다. 하지만 여성노숙자를 위한 시설은 많지 않다. 그래서 몇 해 전 불교계 여성학자가 여성노숙자 시설을 맡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간이 되면 꼭 그곳에 찾아가 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드디어 올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등공양을 올리게 되어 회원들에게 등공양비를 전액 보시하자고 했더니 모두 선뜻 동의해주었다. 적은 금액이지만 노인무료급식소와 여성노숙자 시설에 나누어 기부했다. 특히 여성노숙자시설은 처음 가는 곳이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알아보기 위해 회원들과 함께 갔다.
그곳은 불교단체가 지원하는 유일한 여성노숙자 시설로, 서울 시내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 열다섯 명이 살고 있었다. 평일 오후 여서 모두 일터로 나가고 신임 관장님과 직원 한 분이 우리를 반겼다.
작고 오래된 시설이지만 그마저 없었다면 유혹에 빠졌거나 자포자기하여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를 이들이 서로 기대며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동안 열심히 저축해서 2년 뒤에는 시에서 알선한 임대아파트를 마련하여 나간 분도 있고, 또 다른 시설로 이동한 분도 있다고 한다. 정말 몸 하나 누일 공간만 있으면 이렇게 다른 삶을 살 수 있는데, 한 평의 땅이 누군가에겐 호화로운 저택보다 더 소중한 공간인데….
낡은 시설을 개수할 필요도 있고 운영경비 지원도 필요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정신적인 치유이다. 밤늦게 일터에서 돌아오면 다음날 다시 일터로 나가기 위해 두 발 뻗고 자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처지에 상처 난 마음을 돌볼 여력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생존의 절박감이 크더라도 그들이 되돌아와 살게 될 사회는 예전의 어둡고 외로운 세상이 아니라 따뜻하고 밝은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거친 삶을 다독이고 궁지로 몰렸던 마음을 활짝 펴줄 위로가 필요해 보였다.
종교가 할 수 있는 역할이란 경제적인 지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것,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날은 선뜻 약속하지 못했지만 꼭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명법스님 은유와마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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