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의 실패·文대통령의 과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한 달 됐다. 절차와 법도를 지키지 않는 모습이 엿보인다. 돌연 서울중앙지검장 직급을 낮췄다. 대통령이 택한 사람을 앉히려는 의중 때문이었다. 위법은 아니지만 관례는 깨졌다. 일선 검사들까지 나서 절차 위반을 얘기했다. 4대강 정책감사도 시작됐다.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다고 한다. 감사원은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기관이다. 돌려서 지시하는 형식이 옳았다. ‘정치 보복’이라며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이 반발한다.
외교부 장관 인선은 더하다. 위장전입을 청와대가 먼저 깠다. 위장전입보다 능력을 높이 산다고 했다. 국회와 국민에 대한 결례(缺禮)다. 위장전입의 엄중함을 따지는 건 국회 청문회다. 그 결과를 보고 결론 내는 건 국민 몫이다. 그걸 청와대가 앞서갔다. 위장전입을 ‘용서해도 될 위장전입’이라 결론 냈고, 장관 자격을 ‘능력 충분한 적임자’라고 결론 냈다. 하필이면 거기서 탈세, 투기, 학교 유착 등의 의혹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임기 5년의 겨우 한 달이다. 좀 미뤘어도 괜찮았다. 어차피 검찰은 개혁 앞에 목을 내놓고 있다. 절차 논란까지 감수하며 서울지검장부터 앉힐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이명박 4대강은 탈탈 털리게 돼 있었다. 가뭄만 지나면 언제든 터져 나갈 보(洑)였다. 굳이 감사원 독립성 논란까지 살 필요가 없었다. 며칠만 더 살폈어도 강 후보의 의혹은 더 볼 수 있었다. 그랬더라면 ‘2005년 7월 이후’라는 궁색한 조건을 달며 양해를 구할 필요도 없었다.
400년 전 광해군 시대는 극적(劇的)이었다. 유일하게 북인(北人)이 끌고 갔던 개혁 왕조였다. 대동법(大同法)으로 기득권 목을 겨눈 왕조였다. 명(明)ㆍ청(淸) 군사 압박에서 국익을 챙기려 한 중립외교 왕조였다. 문재인 정부도 닮았다. 진보세력이 끌어갈 개혁 정부다. 경제주체를 교체해 사회 틀을 바꾸려는 정부다. 미(美)ㆍ중(中)의 사드 압박에서 실리를 챙기려는 중립외교 정부다. 닮아도 소름 돋게 닮았다. 하지만, 결론까지 같아선 안 된다.
광해군의 개혁은 실패했다. 그가 꿈꿨던 위대한 제국의 꿈도 사라졌다. 그 이후 사직(社稷)은 호란(胡亂)에 무릎 꿇었고, 국토(國土)는 대국(大國)에 유린당했다. 실패의 멍에는 폐모살제(廢母殺弟)였다. 어머니-인목대비-를 폐하고, 동생-영창 대군-을 죽였다며 쫓겨났다. 그게 조선이었다. 성리학이 곧 법이고 도리였다. 그 성리학이 ‘임금도 따라야 할 절차와 법도’였다. 광해군은 그걸 어겼다. 적어도 수백 년간 ‘그걸 어긴 임금’이라 적혔다.
문재인의 개혁은 성공해야 한다. 국민 80%가 성공을 바란다. 그 성공을 위한 과제가 400년 전 광해군에게 있다. 문 대통령도 영화 ‘광해’를 봤다고 했다. 영화가 끝나도 일어서지 못하고 크게 울었다고 했다. 아마도 ‘광해-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울림이 커서였지 않을까 싶다. 그랬다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대사를 더 절절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임금이라 하여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음을 어찌 모르느냐.’
‘광해군 개혁’이 안 한 것-바쁘더라도 여유롭게 가고, 번거롭더라도 돌아서 가고, 확신이 있어도 대화하며 가고-을 하면 ‘문재인 개혁’은 성공한다. 지난 한 달은 그렇지 못했다.
김종구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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