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 조선의 재건을 꿈꾸다] 민생문제 해결에 진력한 박문수

▲ 대동여지도 소천 일대. 우천(牛川)이라고 명기된 곳으로, 오늘날 다산 생가가 있는 곳이다.
▲ 대동여지도 소천 일대. 우천(牛川)이라고 명기된 곳으로, 오늘날 다산 생가가 있는 곳이다.
박문수, 소천(苕川) 일대에 정착하다
박문수(1691~1756)의 호는 기은(耆隱)이고, 본관은 고령이다. 그가 속한 고령 박씨는 숙종 연간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될 때부터 소론 계열로 활동하였다. 큰아버지인 박태한(朴泰漢)과 아버지 박항한(朴恒漢) 등이 소론 영수인 윤증(尹拯)의 문하에서 수업한 것도 그 하나의 계기였다.

 

박문수는 1723년(경종 3) 증광문과에 급제한 뒤 예문관검열을 시작으로 영조대에는 대사간, 도승지, 영남감사, 경기감사, 예조판서 등을 역임하면서 소론을 이끌었다. 같은 시기 역시 소론 세력을 주도한 이종성(李宗城)은 박문수의 외사촌이다. 

 

한편 박문수는 50대 이후에는 미사(渼沙) 일대에서 우거하다가 60대에 소천(苕川) 일대에 새로운 거주지를 마련하고 있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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