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초 미국을 방문한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펑리위안(彭麗媛) 부부는 긴박한 정상회담 가운데서 트럼프 대통령 내외와 함께 아라벨라(5세)와 조지프(3세) 남매가 부른 중국 민요 ‘모리화(茉莉花)’로 모처럼 흐뭇한 시간을 가졌다. 중국어를 또박또박 잘하는 이 남매는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의 자녀들이다.
‘아름다운 모리화여
사랑하는 님에게
한 송이 꺾어 드리고 싶네
눈보다 희고 아름다운 모리화여’
이러한 가사로 시작되는 모리화 노래는 중국의 창장(長江) 남쪽에서 유행하고 있는 민요의 이름이기도 하다. 중국의 아열대 산지에서 자생적으로 피는 모리화는 그 독특한 향과 순백의 색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 그 노래가 민요로 만들어졌다.
1896년 청조(淸朝)의 북양대신 리훙장(李鴻章)이 유럽을 순방하였다. 방문국에서는 국빈을 맞아 연주할 국가(國歌)가 필요했다. 당시 청조에서는 국기(國旗)로서는 황룡기가 있었지만 국가는 없었다. 리훙장은 중국에서 누구나 잘 아는 모리화 노래의 곡을 임시 국가로 지정하였다.
1920년대 초 이탈리아의 작곡가 푸치니가 중국의 투란도트 공주를 주제로 한 오페라 ‘투란도트’를 작곡할 때 모리화 곡을 주제곡의 하나로 삽입함으로써 모리화 노래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949년 신중국 건국 후 중국의 공식 국가는 항일의용군 행진곡으로 바뀌었지만 모리화 노래는 여전히 중국을 상징하는 노래에는 변함이 없다.
1999년 마카오가 중국으로 반환될 때 모리화 곡이 연주되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메달 시상식 때에도 이 곡이 연주되었다. 중국을 상징하는 노래로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은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 우리의 ‘아리랑’처럼 즐겨 부른다고 한다. 시 주석 내외가 이방카 자녀의 모리화 노래를 듣고 잠시 고향 생각을 하였는지 모른다.
모리화는 3~6세기 중국을 지배한 북방의 기마민족과 함께 중앙아시아로 전래됐고 이 지역에서 세력을 떨친 아랍인에 의해 북아프리카 튀니지까지 흘러들어 갔다. 모리화의 순백의 색상은 청결을 좋아하는 튀니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튀니지의 국화(國花)가 되었다. 튀니지에서는 ‘신의 선물’이라는 의미로 모리화를 야스민(jasmeen)이라고 불렀고 이것이 영어권에서는 재스민(jasmine)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2010년 튀니지의 노점상 청년이 부패한 경찰의 단속에 분신자살로 항의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튀니지 민중의 반정부 투쟁으로 24년간 계속된 독재정권이 무너졌다. 튀니지 혁명을 ‘재스민 혁명’으로 부르는 것은 재스민이 튀니지의 국화이기 때문이다. 재스민 혁명은 튀니지에 그치지 않고 이집트 리비아 등 다른 아랍의 국가에도 확산되어 이른바 ‘아랍의 봄’을 가져온 기폭제가 되었다.
모리화는 차(茶)로도 만들어져 차의 나라 중국인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일반 차에 없는 독특한 향과 모리화의 하얀 꽃잎이 들어 있는 모리화차는 중국에서 손님이 오면 즐겨 내 놓는 차다. 11세기 중국의 송조(宋朝)시대, 차의 고장인 푸젠성(福建省) 산지에서 흔히 피는 신선한 모리화를 녹차에 섞어 꽃의 향기가 찻잎에 흡수되도록 하여 만들기 시작한 것이 모리화차로 외국에서는 재스민차로 알려져 있다.
유주열 前 베이징 총영사·㈔한중투자교역협회자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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