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선, 반장선거에서 배워라

이용성 사회부장 ylees@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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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딸의 반장선거가 있었다.

 

이미 몇 차례 떨어진 경력(?)이 있어 ‘4전 5기’를 꿈꾸는 도전이었다. 선거 전 수차례 거울을 보고 정견발표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은근히 좋은 결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또 떨어졌다. 상처를 입었을까 걱정하는 마음과 달리 딸은 쿨하게 2학기 때 또다시 도전을 선언했다. 부모로서 도움 줄 것이 있을까 싶어 딸에게 반장선거에 대해 물어봤다가 예전과 다른 체계적인 민주주의 방식에 매우 놀랐다.

 

우선 친구의 추천을 받은 뒤 3명의 동의를 얻어야만 반장 입후보가 가능하다. 또 공약을 담은 포스터를 손수 만들고 ‘정견발표’ 를 통해 친구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공약을 발표해야 한다. 특히 친한 친구에게도 추천 및 동의요구는 물론 자신을 뽑아달라는 부탁을 할 수 없는 등 ‘부정선거’를 사전에 막아 버렸다.

 

여러 방안(?)을 마련해 은근슬쩍 딸의 친구들에게 잘 보여 2학기 때 반장이 되길 기대한 기자를 부끄럽게 하는 대목이다.

 

이런 초등학교 선거가 중학교에 들어가면 몇 단계 업그레이드돼 ‘진짜 일꾼’을 뽑는 선거 방식이 도입된다. 도내 한 중학교는 후보로 선정되면 일정 기간 교실 청소 등 ‘미션’을 부여, 학생들이 후보의 마음가짐 등을 볼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토대로 추천 서명을 받고, 정확한 규격의 포스터로 선거운동을 한 뒤 최종적으로 반장을 뽑는다. 초ㆍ중학교부터 민주주의 의식을 함양하고 민주주의 꽃인 ‘선거’를 체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선거 방식이 시도되는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대선전을 보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대통령 파면과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야기된 대선이 극단적인 언어로 서로 헐뜯고 비방하는 네거티브가 만연, 볼썽사나움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등장한 신조어만 봐도 정책대결보단 네거티브전이 주 선거전략인 듯하다. 상대 후보를 비방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는 뜻의 ‘문모닝’, ‘안모닝’이라는 말과 함께 ‘문찍김’(문재인 찍으면 김정은이 대통령). ‘안찍박’(안철수 찍으면 박지원이 상왕), ‘홍찍문’(홍준표 찍으면 문재인이 된다) 등 정책은 사라진 채 프레임만 만드는 신조어가 등장하고 있다.

문모닝, 안모닝은 후보 측근들이 트위터 등 SNS를 활용해 비방 메시지를 올리는 것이다. 이들은 ‘문재인 아들 취업비리’, ‘노무현 사돈 음주운전 은폐’, ‘안철수 신천지·조폭’, ‘안철수 딸 재산 비공개’ 등 자극적인 소재만 들고 나온다.

 

이런 사정에 정작 실질적 정책대결은 보이지 않아 후보들의 정책과 공약이 무엇인지 국민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초ㆍ중학교 선거도 공약을 발표하는데 한 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 선거에서 대한민국 미래를 가늠해 볼 공약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논어 ‘공야장편’에 나오는 ‘불치하문(不恥下問)’ 이라는 말이 있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위나라 대부인 공문자(孔文子)의 시호가 어떻게 해서 ‘문(文)’이 되었는지를 물었다. 이에 공자는 “민첩해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로써 시호를 문이라 한 것(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文也)”이라고 대답했다. 배우기를 진실로 좋아한다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기꺼이 물어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뜻의 ‘불치하문’을 대선 후보자들과 선거에 임하는 모든 이에게 던져주고 싶다. 공정한 아이들의 반장선거 보다 못한 대선이 돼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대선에 나온 후보자 진영은 대한민국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공약과 비전을 국민에게 정확히 알려 유권자는 물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용성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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