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대통령 후보의 연설과 그 무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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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도 대선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탓인지 대선 후보들이 하는 말 한마디가 각 매체를 장식하며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의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문이 표절 논란을 일으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안 후보 연설문 표절 논란은 놀라움과 당혹감을 준다. 안 후보의 스피치 방식이 너무 단조로워 맥이 빠진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단기간에 목소리까지 신뢰감 주는 음역대로 바꿔가며 패기 넘치는 연설로 주목을 받는 후보여서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번 연설문이 오바마의 연설문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어 보인다. 일각에서는 오바마 ‘오마주(hommage: 영화 등에서 다른 작가나 감독의 업적과 재능에 대한 경의를 담아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모방하는 일)’ 정도여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견해도 있지만 윤리적인 비난을 피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안 후보 측은 “표절이 아니라 영감을 얻은 것이다. 또 오바마가 젊고 매력적인 대통령으로 국민 통합이라는 의미에서 좋은 문구를 인용, 발전시킨 것을 표절이라고 트집 잡는데 어이가 없다”며 가벼운 대응을 보이는데 이러한 자세도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 후보 연설이 아닌 가벼운 연설이라도 인용을 밝히지 않고 타인의 아이디어를 차용해서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더구나 대통령의 후보 수락 연설문이나 연설 방식은 흠결이 없어야 한다. 대통령 후보라는 직분에 맞는 무게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 후보로서 국민과의 약속을 천명하는 엄중한 자리인 만큼 온 마음을 담아 자신이 어떤 비전을 가진 후보인지를 알리는 자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또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실천의지를 연설을 통해 표명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후보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연설문을 만들고 또 그런 연설이 유권자를 감동시키고 설득시킬 수 있다.

 

세계의 많은 사람이 미국의 링컨, 오바마 대통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연설에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영감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에게 감동을 준 이들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밝히며 당당하게 인용했을 것이다. 한 국가 대통령 후보의 연설은 더욱 그랬어야만 했다. 처음부터 차용했음을 밝히거나 아니면 영감을 준 대상보다 더 갈고 다듬어 연설자의 언어로 재탄생 된 연설문을 만들어야만 했다.

 

표절 의혹에 대해 ‘트집 잡는다’며 ‘어이없다’는 가벼운 대응 자세는 자칫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이 주는 의미를 너무 가볍게 본 것은 아닌지 오해를 살 수도 있다. 해외뉴스에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지난해 7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가 미셸 오바마 연설 표절 논란 당시 트럼프 측에서는 실수를 인정하며 대국민 사과로 마무리했었는데 안 후보 측의 무성의한 대응과 오버랩 된다.

 

대통령이 될 사람은 후보의 수락 연설이 갖는 엄중함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국민은 대선후보들의 연설을 통해서 누구를 차기 대통령으로 뽑을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순 신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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