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김수남 검찰총장의 법불아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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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검사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범죄 수사의 개시, 진행, 종료, 기소, 공소유지, 행형, 교정업무에 이르기까지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 심지어 일반 법률이 아닌 헌법에까지 검사만이 영장청구권을 갖는다며 제왕적 권력을 확실하게 보장하고 있다. 

이러한 검찰권은 스폰서를 만나면 스폰서를 위해서, 정치인을 만나면 정치인을 위해서 쉽게 사용된다. 속칭 ‘그랜저검사’, ‘벤츠검사’가 전자라면, 정치적 목적을 위한 ‘표적수사’, 권력에 대한 ‘봐주기 수사’가 후자다. 청와대 민정수석이 대부분 검사출신이라거나 현직 검사가 청와대로 편법 파견되어 대통령의 의중을 검찰에 전달하는 기능을 했던 것은 후자를 위한 모습이다.

 

이러한 비판을 평소 의식한 탓인지 김수남 검찰총장은 취임식에서부터 법과 원칙을 강조했다. 특히 중국 고전 한비자에 나오는 ‘법불아귀(法不阿貴)’. 즉, 법은 ‘귀한’ 사람에게 아첨하지 않는다는 모토를 들고 나왔다. 지난해 검찰이 국정농단사건을 수사할 때도 인용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하나 살펴볼 것이 있다.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이후 박 전 대통령에게 국가원수에 걸맞은 ‘귀한’ 품격이 있는 장면을 떠올려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귀한’ 장면이 없다면 김수남 검찰총장은 자신의 결정이 아예 아첨인지의 여부에 대한 고민조차 할 필요가 없다.

 

기억을 반추해보면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지자 박 전 대통령은 그동안 반대해왔던 개헌카드를 갑자기 꺼내 들며 실체를 덮으려 했다. 이후 최순실의 존재가 인정되고 이어진 몇 차례 국민담화에서도 거짓말은 계속되었다. 기자의 질문을 뒤로 한 채 퇴장하는 모습 역시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렸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 자괴감이 든다’는 말은 국민들의 대통령에 대한 실망을 증폭시켰다. 

더구나 수많은 언론매체를 놓아두고 특정 1인이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하고만 인터뷰하는 모습에서는 극단적 편협함이, 탄핵인용 후 국민을 향한 몇 문장 안 되는 메시지에서는 구속만 피하고 싶다는 이기심만이 묻어났다. 어디에도 품격있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의 ‘귀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국민이 볼 수 있었던 것은 파면 후에도 변함없이 드나드는 박 전 대통령의 올림머리를 위한 미용사들과 최순실의 폰을 정성스럽게 닦아주던 한 행정관의 끊임없는 심부름 모습뿐이다.

 

자기를 임명해 주었던 대통령을 대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심정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법률 ‘알파고’가 있다면 대신 결정하기를 바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안의 중대성, 증거인멸 가능성, 도주의 우려와 그에 따른 구속 여부에 대한 지금까지의 거대한 법률 데이터를 입력해 놓은 슈퍼컴퓨터를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법률 ‘알파고’가 있다고 하더라도 굳이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법리상으로는 이번 사안은 명확하기 때문이다. 공무원 신분이 아닌 최순실이 이미 구속된 사유는 대통령과 공모하였기 때문이고, 이재용 부회장이 이미 구속사유도 대통령의 영향력을 보고 돈을 줬기 때문이다.

모두 대통령의 존재를 전제로 죄가 성립되고 구속된 것이다. 다른 청와대 참모들의 구속도 마찬가지다. 만약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지 않는다면 이미 구속된 자들도 모두 석방하여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이 진행됨이 맞다. 아무리 제왕적 권력을 가진 검찰총장이라도 구속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는 어려웠다.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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