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를 빛낸 역사인물] 남이(1441~1468)

모반 혐의로 처형된 비운의 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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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1460년 무과에 급제하고, 세조의 총애를 받으면서 여러 무직을 역임했다.

 

1467년 명을 받아 포천 등지에서 도적을 토벌했고,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키자 토벌에 참가했다. 1468년에 오위도총부도총관을 겸했으며, 이어 병조판서에 발탁됐다.

 

그러나 신숙주·한명회 등 원상 세력에 의해 구성군·강순 등 이시애의 난 평정으로 등장한 신 세력이 제거될 때 강희맹이 한계희에게 남이의 사람됨이 군사를 장악하기에 마땅치 않다고 말한 것을, 예종이 알아 해직됐다.

그가 숙직을 하고 있던 중 혜성이 나타나자 “혜성이 나타남은 묵은 것을 없애고 새 것을 나타나게 하려는 징조다”라고 말했는데, 이를 엿들은 병조참지 유자광이 역모를 꾀한다고 모함해 능지처사당했다.

 

그 뒤 1818년 우의정 남공철의 주청으로 강순과 함께 관직이 복구됐다. 어릴 때 권람의 딸이 귀신의 장난으로 죽게된 것을 남이가 귀신을 물리치고 살려준 것이 인연이 돼그녀를 아내로 맞았다는 일화가 있다. 묘는 화성시 비봉면에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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