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값이 2배 이상 오르는 등 가격 폭등 현상이 빚어지자 정부는 관세면제와 운송비 지원하며 부랴부랴 해외에서 계란을 수입했다. 이제는 수입한 계란이 팔리지 않고 이의 재고로 인한 처리로 고민한다고 한다. 정부가 이러한 물가 행정에 빠져 있는 동안 업체들의 줄도산은 계속됐다. 정부의 조류독감 관리 미숙으로 결국 국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한번 올랐던 계란 값은 미국산 계란공수로 한풀 꺾이면서 안정될 듯하더니 미국 내 조류독감 발생으로 미국산 계란 수입이 중단되자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산 계란 수입 방침에 다시금 안정세를 되찾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인터넷의 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계란 중품의 평균가격은 7천272원으로, 가격 폭등 시점에 비해 많이 내렸지만, 계란 가격은 여전히 가격 폭등 전 평균에 비하면 35% 이상 높은 상태이다. 그런 탓인지 계란 인심도 아직은 여전히 예전과 같지 않은 것 같다.
며칠 전 한식집에 갔더니 뚝배기 계란탕을 주었는데 전보다 더 반가웠고 맛도 더 있는 것 같았다. 필자는 계란탕을 좋아한다. 그래서 거의 언제나 한 그릇 더 얻어먹곤 했다. 여느 때처럼 체면 무시하고 계란탕을 하나 더 달라고 하였더니 추가로 금액을 받는다고 했다. 결국 조류독감이 계란탕 인심조차 사납게 만든 것 같다.
그런데 이번 계란 파동을 겪으면서 필자는 새삼스레 중학교 시절에 있었던 그리 즐겁지 않은 추억이 떠올랐다. 중학교 2학년 때이니 지금부터 50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2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치르기 전이었는데 한 반 친구 녀석이 자기네 집에 가서 공부를 같이하자고 여러 번 나를 졸랐다. 친구 녀석은 시골 학교에 다니다 전학을 온 친구다.
중간고사를 치르고 난 후 학업성적이 최상위급 학생은 자연히 알려지게 됐지만, 친구는 전학 온 탓으로 그리 성적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 탓으로 거의 매시간 수업이 끝나면 나보다 덩치도 훨씬 큰 녀석이 아쉬운 자세로 수업 중에 궁금했던 것을 나에게 질문하곤 했다.
지금 기억하건대 친구 녀석이 나이도 필자보다 두 살 정도 많았던 것 같다. 아무튼 떨어진 성적을 올려 보려고 나름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어린 시절 필자의 눈에도 보였다. 그러니 하룻밤 자기네 집에 가서 필자로 하여금 자기 독 과외 선생님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허락을 맡았다고도 했다. 여하튼 필자는 어머니 허락을 받아 그날 친구네 집에 가서 하룻밤같이 공부도 하며 나름 의미 있는 우정을 쌓았고, 다음날 아침 친구 어머니가 사주신 도시락을 받아들고 학교로 왔고 점심시간이 됐다.
문제는 도시락 뚜껑을 열면서 발단이 됐다. 친구의 도시락 흰밥 위에는 계란 후라이가 놓여 있었지만 내 도시락에는 계란이 없었다. 친구의 당황한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때는 계란이 지금처럼 싸지 않았다.
그러나 계란 한 개의 값 때문에 아들의 체면을 모두 구겨버린 친구 어머니의 짧은 생각이 지금 돌이켜 보면 측은한 생각이 든다. 그때는 사는 것이 그리 힘들었나 싶다. 그러나 귀한 아들을 챙겨야 하는 어머니의 계산이야말로 소탐대실이 아니었나 싶다.
이철태 단국대 화학공학과 교수·지식재산교육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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