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영국의 ‘하드 브렉시트’와 헨리 8세

▲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 법안이 2월8일 하원에서 통과됐다. 이 법안은 리스본 조약 50조에 따라 EU 측에 영국의 탈퇴 의사를 공식 통보하고, Brexit 협상 권한을 총리에게 부여하는 내용이다. 이로써 지난해 6월 영국 국민들이 국민투표에서 51.9%의 찬성을 한 영국의 EU 탈퇴가 가시화되고 있다.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는 각종 연설을 통해 영국의 EU 탈퇴가 엉거주춤한 형태가 아닌 분명한 탈퇴가 될 것이라고 언급하여 Hard Brexit(강경 탈퇴)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Hard Brexit 는 국민투표가 실시되기 1년 전인 2015년 2월 HSBC(홍콩상하이은행) 보고서에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위험성이 높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EU와의 단일시장협정(재화ㆍ서비스ㆍ자본과 인간의 자유이동), 공동관세 등 모든 관계를 청산하는 것이 Hard Brexit 이고, 이 중 일정부분을 유지하는 것이 Soft Brexit(온건 탈퇴)라고 보면 된다. 영국과 EU 간 관계단절의 강경, 온건 여부에 따른 것이다.

 

EU 내 일부 회원국의 입장에서는 영국이 EU의 재정분담금을 일정부분 환수받고, 영어라는 소통 수단의 강점을 내세워 EU 내 많은 공무원을 파견하는 등 많은 혜택을 보면서도 화폐동맹에 가입하지 않고, 공동외교 안보정책 결정 시 미국을 편 드는 모습을 보이는 등 EU 정책에 빈번히 제동을 거는 것이 눈엣가시였다. EU 회원국들은 떠나는 영국에 대해 애증이 교차하는 심정일 것이다. 영국입장에서는 런던 금융시장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금융서비스의 자유를 확보하고, 국경통제를 통한 이민 유입을 억제하는 등 자국에 유리한 협상을 원한다.

하지만 EU는 영국-EU 간의 새로운 협정을 영국이 원하는 것을 고르듯이(cherry picking) 협상하는 것에 반대 입장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양측은 협상을 시작하기도 이전부터 기 싸움을 하고 있는 양상이다. 양측 간의 협상은 리스본 조약 50조에 따라 향후 2년간 진행될 예정이다. 2년 이내 협상이 완료되지 않으면 첫째, 자동 탈퇴, 둘째 협상기간 연장의 방법이 있다. EU 역사상 유례가 없는 탈퇴 협상에서 2년 이내에 EU 27개 회원국을 만족시키는 협상을 완료하는 것은 지난한 일로 보인다.

 

한때는 전 세계의 약 4분의 1을 통치하던 영국이 다시 섬으로 회귀하는 것 같다. 영국은 과거에도 유럽 대륙과의 전면적인 단절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6명의 왕비와 결혼한 왕으로 유명한 헨리 8세(Henry VIII, 재위기간 1509~1547) 영국 국왕은 부인이었던 캐서린(Catherine) 왕비와 이혼하고 앤 볼린(Anne boleyn)과 결혼하는 과정에서 그 당시 유럽을 대표하는 교황과 가톨릭의 권위를 부정하고 영국 종교개혁을 통해 성공회를 창설한다. 영국과 유럽과의 관계 단절의 역사를 보면서 문득 칼 마르크스의 말이 떠오른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김상일 道 국제관계대사·前 주시카고 총영사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