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부산 소녀상과 한일 관계

▲
연초부터 부산 소녀상 설치를 둘러싸고 한ㆍ일 관계가 경색돼 안타깝다. 금번 사태의 원인은 양국 정부가 작년 12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미래를 지향하는 대국적 관점에서 합의를 도출하였으나, 불행히도 정부 간 합의가 위안부 문제를 종식하기에는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과가 불완전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 점이다.

 

우려되는 것은 일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앞으로도 한국 측이 희망하는 수준의 진정성이 담긴 사과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며, 한국의 여론도 2016년 12월 정부 간 합의에 관해 비판적 시각을 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금번과 같은 합의 이행에 관한 갈등은 구조화돼 있다고 보인다.

 

양국정부는 12월 합의에 관해 이러한 구조화된 갈등이 양국 관계의 전반적 악화로 발전되지 않도록 관리할 공동책임이 있다. 특히, 일 정부가 평화치유재단 출연금 10억 엔의 제공에 상응하여 우리 정부에게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는 것은 문제점이 있다고 본다.

 

첫째, 양측간 합의 발표문 안에 비추어 일측 요구는 일 측만의 일방적 주장임에 불과하다고 본다. 소녀상 문안은 외교협상적 관점에서 본다면 한ㆍ일 간의 입장 차이가 매우 커 합의도달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타결을 도모키 위해 소위 창조적 모호성(creative ambiguity)에 의존한 것으로 보인다. 일 정부는 합의 후 소녀상 철거에 관한 당위성을 강조하였고, 일 언론은 정부 간 마치 이면 합의가 있는 것처럼 시사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둘째, 신의 성실의 원칙에서도, 부산 소녀상 설치 문제는 지역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한 지방자치 정부의 정치적 결정으로서 지방분권 원칙상 중앙정부의 개입 여지는 제한적이다. 더욱이 국내적으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의 부재에 관해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운신 폭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셋째, 일 정부가 부산소녀상 설치를 양국 간 외교문제로 갈등 수위를 높여가는 것은 일 정부에게 자충수가 되는 측면이 있다. 양국 간 갈등 상황이 고조되어 세계 언론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게 될 경우 일본이 감추고 싶어하는 일본군 위안부문제가 세계에 재조명되는 결과로 귀결될 수 있음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일 정부는 진정성 있는 사과 없이는 12월 합의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결과는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 정부와는 달리 일본 내 양심적인 지식인과 시민단체들은 소녀상의 철거는 일본의 성의 있는 사과로 한국민의 마음이 움직여진 후에야 가능하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일본 내 소수 양심세력의 견해는 일본 사회의 우익적 역사관과 윤리관에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나 앞으로 계속 성장하여 언젠가는 일본사회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를 가져본다. 일본 양심세력이 주류사회로 확대되어 일본인적이 아닌 인류 공동의 역사관을 수용할 때 진정한 일본의 근대화가 완결된다고 보며, 그때까지는 한ㆍ일 간 과거사는 최종적 해결이 어렵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과거사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인내심을 갖고 한ㆍ일 관계를 냉철하게 이끌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길수 前 주그리스 대사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