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보전 없는 개발은 무의미… ‘협치’ 통해 상생발전 이뤄야”
지난 3년간 국립생태원장으로 지내온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담담하고 강한 어조로 대한민국의 현재를 냉철히 진단했다.
최 교수는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개미제국의 발견> <통섭의 식탁> 등을 펴낸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진화생물학자다. 국내 최초, 최대의 국립생태원의 초대 원장으로서 생태연구ㆍ전시ㆍ교육 기능을 융합한 생태 기관으로 지휘하기도 했다.
지난 15년 이상 문ㆍ이과 학문 통합 교육 등을 주장하며 ‘통섭’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최 교수는 “과학과 수학을 줄이는 통합은 무의미하다”며 쓴소리를 쏟아냈다.
또 무릎 꿇고 어린이에게 시상하며 널리 알려진 ’친절한 눈높이 스승’답게 우리 안에 희망이 있음을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대한민국의 발전 방향을 그의 연구실에서 들어봤다.
-국립생태원장으로서 무엇을 이뤘나.
충남 서천이 외진 지역이라 설립 당시 국가에서 걱정이 컸다. 처음 1년에 30만 명이라도 유치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2년 연속 100만 명 유치에 성공했다. 환경부 장관이 초대박이라 하더라. 서천에서 그만한 인파가 몰린 적이 그전에는 없었을 거다.
지역경제에 보탬이 된 것은 대단한 성과다. 생태원이 생긴 이래 음식점이 250개 넘게 생겼다. 수치를 떠나서도 국립생태원이 국제적으로 물론, 국내 사람들 인식 속에 어느 정도 위상을 확보한 것이 만족스럽다.
-아쉬운 건 없나.
없다면 거짓말이다. 우리나라 생태원은 국가기관이 아니라 법인이다. 이명박 정부 때 거의 모든 기관을 법인으로 만들었다. 법인은 국가가 재정적으로 지원하지만 자립하면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하는 것이다.
생태학이 돈 버는 학문이 아니라 법인이 되면 안 된다고 애걸복걸했는데 기어코 법인으로 만들었다. 당시 정부기관 사람들이 국가기관은 자율성이 없으니 법인의 자율성을 가지고 세계적 연구기관을 만들어보라 했다. 그러나 자율성이 없었다. 예산이 정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3년 동안 자율성 확보에 애썼다. 시작보다 나아지긴 했다.
그러나 재정적 독립이 필요했다. 기금 마련이나 수익사업의 필요성을 느꼈다. 전문가들과 만나면서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사람들이 말렸다. 좋은 의미로 돈을 만져도 자칫하면 낭패 볼 수 있다고. 직원들에 월급 외 수당도 주고 싶었는데 아쉽다.
또 나는 시험을 안 보고 성적 평가를 하는 교수였다. 세계적 경영학자들도 평가제도가 조직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찌감치 직원들이 일터를 놀이터 삼아 즐기라는 기치를 세웠는데 큰 변화는 못 만든 것 같다. 평가제도를 바꿔보려고 애썼는데 공공기관이다보니 정부가 마련해놓은 틀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환경은 갈수록 위기다. 당면한 환경 문제는 무엇인가.
과거 환경 문제는 국지적이었다. 어느 지역에서 수은중독이나 기름유출이 발생하는 식으로. 그러나 지금의 기후변화는 전지구적 문제다. 북극 얼음이 녹아 대한민국의 해안선 수위가 올라간다. 대한민국에서 화석연료를 많이 써서다.
기후변화로 인해 세계지도자들이 모여 지구 온도가 매년 2℃이상 올라가지 않게 협의했다. 온도가 2℃ 오르면 가장 큰 문제는 생물다양성의 고갈이다. 매우 심각한데 알리기 힘들다. 북극곰이 멸종위기라 하지만 우리가 출근할 때 물에 빠져 죽은 걸 본 적이 없어 느끼지 못한다.
생물학자들은 내기를 잘 하는데, 앞으로 ‘인류가 20만년을 더 살 거냐’는 내기에 난 ‘못 산다’에 찍었다. ‘이번 세기 안에 인류가 멸종한다’에 걸었다. 그만큼 심각하다. 특히 미국처럼 넓은 국가보다 대한민국이 더 문제다.
-환경에 대한 우리의 국민의식은 어떠한가.
우리 국민의 환경의식은 세계적이다. 이만큼 분리수거 잘하는 국가가 없다. 앞서 가는 국민이다. 전 세계에서 배우는 속도와 실천이 제일 빠르다. 배달민족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시간이 굉장히 짧다. 인식만 제대로 하면 빨리 바뀐다. 수십 만년, 수백 만년 이어온 전통인 매장 풍습이 산야가 무덤으로 변할 것이라는 말에 지금은 화장장이 부족할 정도로 장례문화가 바뀌었다. 국민과 제대로 소통하고 고민하면 무슨 일이든 멋지게 해낼 수 있다.
-정부의 환경 정책 방향은 어떻게 가야 하는가.
정부는 국민을 우습게 본다. 정책 발표하고 따라오라 한다. 절묘한 말이 있다. ‘정부는 정책을 만들고 국민은 대책을 만든다’는. 정부가 고심한 정책도 발표한지 30분이 지나면 인터넷에서 깨진다. 정책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한 마디씩 댓글을 단다. 이제는 정부가 모든 이익집단의 사람들을 고려하며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협치’가 필요하다. 협치를 할 때가 왔다.
-개발은 항상 환경문제와 맞물린다. 환경을 보전하며 발전할 방법은 없나.
그동안 개발론자는 당당했다. 경제개발이라는 것을 들고 자연을 위해 반대하는 사람을 나쁜놈으로 만들었다. 허가받기도 너무 쉽다. 개발을 원하는 사람이 왜 개발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설득하도록 해야 한다.
그럼 무엇을 먹고 사는지 묻게 될 텐데, 국립생태원이 그런 실험을 한 곳이다. 서천은 원래 군산과 더불어 산업단지로 개발할 예정이었다. 군산에는 엄청난 투자로 새만금 개발을 했다. 그래서 서천 사람들도 개발을 요구하며 데모했다.
당시 직접 나서 서천군민을 설득한 분이 노무현 대통령이다. 환경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전에는 벼농사가 중요했지만 지금은 쌀이 남아돌아 바지락 꼬막 캐는 게 이득이다, 서천은 자연 훼손 없이 경제 이득 얻을 수 있는 새 패러다임을 실험해라, 국립생태원을 지어주겠다’고 말했다.
군산 새만금은 애물단지가 돼 고생이다. 그러나 서천은 아름다운 갯벌을 유지하고 있다. 100만 명의 사람들이 오고 있고, 청정 지역 이미지가 생겼다. 공장을 지어야만 국민 소득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땅이 좁은 우리나라는 제일 먼저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자연을 지키면서도 돈을 버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세계가 우리에게 배울 것이다. 국가 지도자가 이것을 이해하고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길은 있다.
-경기천년을 앞둔 경기도의 방향은.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협치하려고 애쓰는 건 좋다. 앞으로 가야할 방향은 그 방향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대립시켜봐야 나올 게 없다. 직접민주주의는 하고 싶어도 효율이 떨어지고. 간접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중간 쯤에 협치가 있다. 과정에서 모두의 의견을 나누면 집행이 쉽다.
경기도에서 남 지사가 그렇게 한다고 하니 반갑다.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 확인은 필요하지만 시도 자체는 굉장히 좋다. 경기도가 이 나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어마하다.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경기도가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국가 미래 상당부분이 발전할 것이다.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신년이다. 절망으로 가득한 이때 희망이 보이는가.
요새 TV에 촛불집회만 나온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KBS 세계는 지금을 봤다. 패널 한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얘기를 했다. “옛날에는 정국이 혼란하면 경제고 사회고 붕괴됐다.
근데 우리는 지금 사회에 큰 동요가 없다.” 이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더라. 그만큼 대한민국이 성숙한 거다. 평화적 집회, 촛농을 지우는 고등학생. 보통 나라가 아니다. 분명 암담한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스스로 어깨 두드리면서 자존감을 가지고 새해를 희망적으로 맞았으면 좋겠다.
최재천 교수는…
△1977 서울대학교 동물학 학사
△1982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대학원 생태학 석사
△1990 하버드대학교대학원 생물학 박사
△1990 ~1992 미국 하버드대학교 전임강사
△1992 ~1994 미국 미시간대학교 조교수
△1994 ~2006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교수
△2006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2007~2008 한국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2007~2009 한국생태학회 회장
△2013~2016 제1대 국립생태원 원장
△ 주요저서
<개미제국의 발견>(1999)<지식의 통섭> (2007)<생태학자 최재천의 세상보기 알이 닭을 낳는다>(2007) <상상 오디세이: 변화를 포착하는 미래 통찰력> (2009)<과학자의 서재> (2015)
<통섭의 식탁> (2015)
손의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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