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달리는 이웃 일본, 아베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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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오랜만에 일본 도쿄를 찾았다. 새로 개발되거나 단장된 도심지역의 밤거리는 화려한 일루미네이션으로 환상적이었다. 상점가들은 붐비고 사람들 표정도 밝아 보였다. 민심을 말한다는 택시기사에게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로 경제가 좋아졌나요?”라고 말을 건넸더니 “글쎄, 나랏빚이 많아져 걱정되는 점도 있지만 변화와 활력이 생긴 것은 확실하지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3년 반 전 일본 근무를 마치고 떠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그때는 “이제 일본은 가망 없어요. 그런데 한국은 대단하네요”라는 말을 흔히 듣곤 했다. 일본은 90년대 이래 ‘잃어버린 20년’의 장기 불황을 겪는 가운데 2011년 미증유의 대지진을 만나, 일본인들의 심리는 결정적 타격을 받은 듯했다. 게다가 정치까지 혼미해 거의 매년 총리가 바뀌는 바람에 국민들이 의지할 국가 리더십도 없었다. 일본의 국제적 위상도 G20 서울 정상회의 후 평가가 높아진 한국에 밀린 듯했다.

 

그랬던 한국과 일본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난 4년 사이 무엇이 작용했을까. 정치리더십이 아닌가 싶다. 2012년 12월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즈음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 총리가 취임했다. 4년이 지난 지금, 한 자릿수 지지율의 박 대통령과는 달리 아베 총리는 60% 전후의 높은 지지율을 누리고 있다.

 

아베 총리는 2006년 9월 당시 고이즈미 총리의 후광으로 54세 젊은 나이에 총리가 되었다. 평화헌법 개정 같은 우익정치 아젠다 외에는 정책비전도 모호했고 경륜도 부족했다. 개인적 인연으로 각료들을 발탁해서 ‘친구 내각’으로 조롱당하기도 하고 각료 스캔들도 끊이지 않았다. 건강도 악화되어 결국 1년 만에 하차했고 그의 정치생명은 끝났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5년 후 2012년 12월 그가 총리로 재등장했다. 일본 내 반응은 1차 집권 때처럼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관측이 흔했다. 그러나 얼마 후 일본은 아베의 리더십에 놀라게 되었다. 그가 내건 경제성장정책-아베노믹스는 많은 회의와 비판에도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그는 강한 리더십으로 집권당은 물론 야당을 제압하며 TPP협상 참여와 농업개혁 등 다양한 정책들을 추진했다.

 

아베 리더십의 성공요인은 인사와 소통이라고 한다. 당내 유력 경쟁자들을 당·정의 요직에 앉혀 총리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탕평판을 짠 것이다. 자신의 주변엔 ‘스가’ 관방장관과 같은 실용적이고 균형감 있는 참모들을 두고 그들의 견제와 쓴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또한 저녁에는 각계각층 사람들과 만나 의견을 듣고 허심탄회하게 소통한다.

 

1차 집권 때 참담하게 물러난 아베에게서 어떻게 이런 리더십이 나왔을까. 2007년 중도 하차 후 그는 재기를 꿈꾸며 제반 국정문제에 대해 각계 전문가들과 꾸준히 토론하며 공부했다는 것이다. 일본 관료들은 아베 총리의 제반 문제에 대한 적확한 이해와 지적 앞에서 얼버무리거나 거짓을 보고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실패를 거울삼아 준비된 총리로 거듭났던 것이다.

 

서형원 前 주크로아티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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