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두 도시는 애초에 수도로서 기능을 할 도시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변방의 군사 도시가 어쩌다 연고를 가진 실력자에 의해 수도로 격상된 경우이다. 실력자라면 베이징의 경우 명 태조 주원장의 넷째 아들로 무용이 뛰어난 주체(朱 후에 영락제)였고 도쿄의 경우 천하를 통일하여 쇼군(將軍 군의 최고 사령관)의 지위에 오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였다.
도쿄는 일본 왕(天皇)이 거주하는 교토(京都)에서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변방 지역이다. 도쿄는 본래 에도(江戶)라는 이름의 작은 어촌이었으나 도쿠가와에 의해 군사도시로 개척되었다. 베이징도 정치 문화의 중심지 난징(南京)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이다. 몽골이 세운 원(元)의 수도를 점령한 주원장은 원의 권토중래를 막기 위해 강력한 군대를 주둔시켰다.
둘째, 두 도시가 변방에 위치하다 보니 전통적인 수도 기능을 가지고 있던 라이벌 도시가 언제라도 수도의 기능을 되찾아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도쿄의 경우 라이벌 도시 교토가 있고 베이징의 경우 난징에 의해 수도가 바뀔 수 있었지만 그 위치의 중요성으로 왕조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셋째, 두 도시가 전통적인 정치 사회의 중심지에서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 수도의 기능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보이지만 오히려 인근의 미개척 지역을 크게 확장하는 역할을 하였다. 일본의 경우 도쿄에 수도를 정함으로써 도호쿠(東北)지방과 홋카이도(北海道)를 안을 수 있었고 베이징의 경우에는 중국의 둥베이(東北 옛 만주지역)지방을 지배하는데 유리한 위치가 되었다.
일본은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에도 일본 왕의 왕궁이 있는 교토로 돌아가지 않고 도쿠가와 정권의 중심이었던 에도를 ‘동쪽의 서울’이라는 의미의 도쿄(東京)로 이름을 바꾸고 수도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에도 마오쩌둥(毛澤東)이 난징을 수도로 한 장제스(蔣介石)를 타이완으로 쫓아냈지만 베이핑(北平)으로 불리었던 자신의 근거지를 베이징(北京)으로 이름을 바꾸고 수도로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의 서울을 ‘소우루’로 외래어 표기로 부르고 있지만 중국은 조선시대의 명칭인 한청(漢城 한강 변의 도시)으로 부르고 있었다. 중국과 수교 이후 서울시가 서울이 일개 도시가 아니고 수도라는 의미를 강조하여 유사한 발음과 뜻을 찾아 중국어 표기를 ‘서우얼(首爾)’로 확정했고 중국도 이를 따르고 있다.
베이징과 도쿄 두 도시가 서울에서 북과 동으로 1~2시간의 비행거리에 있다. 한반도가 통일이 되고 나면 한중일 동북아시아의 중심은 북쪽의 서울(北京)도 아니고 동편의 서울(東京)도 아닌, 이름 그대로 진짜 ‘서울’이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유주열 前 베이징 총영사·㈔한중투자교역협회자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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