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유럽연합(EU)의 미래

EU의 통합과정은 인간의 상상력이 창조한 이상향(理想鄕)을 추구하는 열정이 현실세계의 제약을 극복해가는 반세기를 넘어 1세기를 향해가는 장편의 드라마이다.

1951년 유럽통합의 대장정을 출범시킨 상상력에는 르네상스,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 그리고 산업혁명을 일으켜 근대 문명을 선도한 유럽의 자부심이 담겨있다. 그러나 최근 유럽통합호(號)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 오디세이가 험난한 지중해에서 고난의 항해를 겪는 것과 같은 형국에 처해 있다.

 

첫째, EU가입 후에도 파운드화 사용을 고수하면서 유럽통합에 한발만 담그고 있던 영국은 결국 공동의 번영에 대한 신뢰를 철회하고 시장개방과 유럽표준화 대신 영국의 정체성 보존과 노동유입 제한을 선호함으로써 유럽통합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영국의 탈퇴는 오디세이를 항해에서 이탈케 한 사이렌의 미성(美聲)처럼 EU의 해체를 유혹하는 항구적인 원심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둘째, 그리스는 3차례 구제금융(bail-out)의 조건으로 EU채권국들이 제시한 가혹한 재정긴축조치를 이행중에 있으나 IMF의 권고대로 채권국들이 그리스의 대외부채를 현재의 GNP 180% 수준에서 120% 정도로 탕감해주지 않는 한, 그리스의 재정위기와 구제금융의 악순환은 종결될 전망이 희박하다.

 

그리스정부는 긴축조치를 성실히 이행하여 부채경감 조치를 기대하고 있으나 채권단은 포르투갈 등 다른 구제금융 수혜국들과의 형평성 및 국내 정치적 부담으로 인해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앞으로 그리스의 재정긴축의 성과가 미미하여 구제금융이 실패할 경우 채권국정부들은 그리스가 EU를 탈퇴토록 권고하거나, 그리스정부가 국민에게 더 이상 긴축정책의 고통과 희생을 설득할 수 없게 되어 EU의 자진탈퇴를 고려할 가능성도 있다. 그리스의 경제위기에서 유로화 사용의 위험을 목도한 동구의 신규 회원국들은 자국화폐 사용을 유지한 채 유로존 가입시기에 관해 장기간 결정을 연기하고 있다.

 

셋째, EU는 시리아 등 중동지역 난민들을 분담 수용하는 난민쿼터제에 합의하여 인도주의적 대의를 추구하고 있으나 EU 및 미국의 시리아 내전에의 적극적인 개입의지가 부족하여 난민의 EU유입 사태는 조속히 해결될 전망이 높지 않다. 앞으로 난민 수용에 관한 회원국들의 국내 정치적 부담이 가중되면 회원국간 이견 봉합이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난민과 이민문제는 유럽 대륙에 극우 정당이 급격하게 부상하고 있는 배경이 되고 있다. 프랑스, 오스트리아의 극우정당 지도자들은 선거에 임하는 주요 정강으로 반이민과 EU탈퇴를 표방하면서 대중에게 영합하고 있다.

 

유럽통합의 역사는 지금까지 수차례 위기를 겪을 때마다 오히려 통합이 심화되어 체제가 강화되는 특이한 반전의 양상을 보여왔다고 한다. 금번에도 EU가 그리스 경제위기 와중에서 구조적 결함으로 노출된 재정적 통합을 진전시켜 통합의 복원력을 회복하여 오디세이의 신화(神話)적 항해가 계속될 지가 주목된다. 이는 EU를 모델로 하는 한국, 중국, 일본간 동북아 등 지역협력의 가능성 검토에 귀중한 교훈을 줄 것이다.

 

신길수 前 주그리스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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