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종교를 믿는다고 할 때 사람들이 믿는 것은 무엇일까? 보통 특정 종교의 교주 또는 숭배 대상인 신을 믿거나 그 종교의 교의 또는 표방하는 이념을 믿는다.

 

그러나 속을 뒤집어보면 초월적인 신이나 추상적인 교의가 아니라 그 종교가 제공하는 초월적인 힘이나 현실적인 힘을 믿는 경우가 더 많다. 그 중 신비체험이나 합일의 경험에서 오는 충만감 때문에 믿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은 원하는 것을 얻게 해주는 힘을 믿으면서 그 종교를 믿는다고 생각한다.

 

정치, 사회, 경제 등 현실적인 삶에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종교의 힘 때문에 종교를 믿는 사람도 있다. 사람의 마음을 모으고 바꾸는 데 종교만큼 강력한 조직이 없기 때문에 정치는 종교의 힘을 이용하거나 억누르기도 했다.

세속화 이후, 사교적인 것에서 발휘되는 종교의 힘에 대한 선호가 뚜렷해졌는데, 사업을 위해, 배우자-경제적 이유만 아니라 같은 종교를 믿는 배우자를 얻고 싶다는 이유에서-를 구하기 위해, 종교인으로부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조언을 얻기 위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가족 때문에, 친구 때문에, 아는 사람 때문에 종교를 믿는 사람이 많다. 사람 때문에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사람 때문에 종교를 떠나기도 한다. 드문 일이지만, 종교인의 인격과 행동 때문에 종교를 믿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종교지도자에 대한 신뢰를 종교에 대한 믿음으로 치환하는데, 비교적 합리적이지만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그 지도자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거나 심지어 신격화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종교를 믿는다고 하면서 종교제도를 믿는 이들도 많다. 큰 절, 큰 교회를 선호하고 건축물이 크고 장엄한 곳을 좋아하는데, 종교지도자의 명예가 높거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다면 신뢰도는 더 커진다. 

다종교시대에 우후죽순 만들어지는 종교 중에서 어떤 종교를 선택해야 할지 모를 때 사회적 신뢰를 기반으로 한 제도는 옥석을 구분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제도는 형식적 요건만 충족하면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내실까지 보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종교기관에 소속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종교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종교를 믿는 사람은 많지만 믿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무엇이 올바른 믿음일까?

불교에서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를 하면 불자가 된다. 다시 말해, 깨달은 존재인 부처님을 통해 내가 깨달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그 가르침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을 믿고, 스승으로부터 수행의 방법을 배울 수 있음을 믿는 것이 불교인의 기본 요건이다.

 

성철스님은 <자기를 바로 봅시다>에서 “각 종교의 절대적인 권위인 교조들의 말씀은 본마음에 가장 큰 장애와 병폐가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금가루가 눈에 끼이면 눈병을 야기하듯 교조들의 말씀도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각 종교의 경전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믿는 종교근본주의자들에게 불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비유로 비판해왔다. 제도와 사람마저도 달이 아니라 손가락이다. 불법승 삼보를 믿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는 역설을 말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익히 들어온 불자들 중에는 심지어 이 이야기마저 손가락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성철스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잘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브라운관에서 매일 보는 연기자들을 이웃사람으로 착각하는 것처럼 너무 익숙해서 다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 종교를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가 진정 믿는 것이 무엇인지 각자 돌아보았으면 한다.

 

명법 스님 미르문화원 은유와마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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