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우리가 일본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공들여 노력할 때였다. 어느 한국투자설명회에서 일본기업인들은 투자관련 인센티브 제도보다는 한반도안보문제와 노사문제에 관해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질문했다. 그런데, 설명회 후 비공식 모임에서 옆자리 일본기업인이 필자에게 일본 기업들이 한국투자를 주저하는 실제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한국에서 투자기업이 인허가를 받는 각 단계마다 누구에게 어느 정도의 향응이나 금품을 제공해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접대비용도 비용이라서 이게 불확실하니 외국기업으로서는 총 투자비용을 산정하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불투명한 청탁·접대 관행은 양질의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데도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또, 90년대 초반 리비아에서, 공관장을 수행하여 태권도 용품들을 기증하러 리비아 태권도 회장을 방문했을 때이다. 경찰수장이기도 했던 그는 우선 감사의 뜻을 표한 뒤, 수년 전 모 한국기업이 태권도장을 지어준다고 약속했는데 아직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한국기업이 대수로 공사 등 건설참여를 통해 리비아의 경제발전에 기여해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한국기업들이 오히려 리비아에서 더 큰 이익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그런 한국 기업들이 문화사업 등에 건전하게 기여해주기 보다는 관료들에게 유형무형의 각종 편익을 제공하면서 자기들 관료 사회를 부패시키는데 기여했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 때 얼굴이 화끈해졌던 기억이 잊혀 지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의 크로아티아 근무 시절. 2014년 11월 한 정부각료가 한국을 방문했다. 얼마 후 주요언론은 그 장관 소속기관의 프로젝트에 관심 있는 한국기업이 초청하여 특급호텔 등 편익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결국 그는 국회의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위원회에 회부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다. 최종적으로는 면책으로 결말이 났지만, 조사가 진행되는 상당기간 동안 언론과 외교가에 친한적인 정부각료는 물론 한국기업의 이름이 불미한 혐의로 오르내리는 게 무척 꺼림칙했다. 배경에는 다른 나라 경쟁기업의 신고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해외시장에서 우리기업의 활동방식에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확대되면서, 우리기업들의 비즈니스 활동이 해당 국가의 여러 분야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래서 우리기업의 영업행태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김영란법이 개선코자하는 부정청탁 행위도 그 중의 하나인 것이다. 법 시행초기 기술적 문제나 혼란도 있겠지만, 법이 의도하는 투명한 비즈니스 관행이 문화로서 정착되는 변곡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서형원 前 주크로아티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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